디카 일기

늦게 찾은 연화못

김창집 2016. 8. 29. 08:27



어제 벌초를 일찍 끝내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가

모처럼 하가 연화못에 들렀다.

 

연꽃이 피기 전

넘어가다 들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시기를 놓쳐 막물로 가고 있었다.

 

아무려면 어쩌랴 싶어

아직도 날 위해 기다려준 꽃들을 향해

합장하는 자세로 셔터를 눌렀다.

     

 

그대에게 - 전병조

 

그대, 방황하지 마라

그대가 어디를 가던

그대 손에 등불 하나 들고 있는 한

그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신이다

 

그대, 욕망에 안달하지 말라

욕망을 갈구하는

스스로 욕망의 늪에 허우적거리다

결국은 죽음의 길을 택하리니

 

그대, 단순해지거라

모든 것은 그대의 눈 속에 있다

그대가 사물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사물의 형태는 수시로 변한다

 

그대, 허영의 신을 믿지 말라

허영의 신은

편견과 오만과 선입견으로 가득차

그대의 두 눈을 멀게 할지니,

 

그대, 허영의 신을 믿느니

차라리 세상을 비통하게 살라

참다운 허무와 영원한 절망의 잠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라

 

결코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것을 포옹할 수만 있다면

만약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대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찬란한 꽃잎을 피워 내는

한 송이 연꽃으로 세상을 밝히리라

     

 

연잎 푸르게 너울대는 - 박종영

 

연꽃 방죽 물안개 분홍색으로

올라오는 초여름에

수면 아래 명쾌한 진흙의 손놀림은

숭숭 구멍 난 연뿌리의 심장을 다독이느라 안간힘이다

저거 빗방울을 거부하는 녹색 잎의 슬기로운 물관작용이다

넓고 창창한 연잎 그늘에 숨어

그 빛깔 닮아가는 청개구리의 익숙한 노래는

곧 피어날 연꽃의 호방한 향기를 닮아

밤하늘의 별을 끌어내리는 꿈 노래다

새로운 시간이 찾아와 읊조리고

후덥한 여름 시작의 오후가 달콤하고 행복한 것은

짧게 지나가는 생의 덧없음일까

논병아리 물 위에 집을 짓고 연둣빛 알 굴릴 즈음

새벽으로 돌아 너울져 짙푸르게 익어가는 키 큰 연잎

저문 시간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깐 쉬며 바라보는

너울대는 연잎에서 궁구는 영롱한 물방울

그 안에 온 우주가 파랗게 익어가며 평화를 귀띔한다

   

 

 

연꽃 보고 오던 날 - 김귀녀

 

둥근 연꽃을 보고 오던 날

보릿고개 넘던 시절을 생각하다

수행 중에 길 찾은 사람처럼

둥글고 부드러운

연꽃의 푸른 줄기를 생각하다

대추나무에 걸린

노을의 붉은 미소를 생각하다

채마밭에 들어 선

남편의 얼굴, 연꽃으로 생각하다

     

 

연못에서 연꽃이 피는 이유를 - 이동식

 

삶이 아름답기 위하여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지만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진흙탕이 있더라.

 

진흙탕 같은 연못에서

연꽃이 피는 이유를,

 

살아오면서 채워진

진흙탕 같은 미움, 그 미움위에

연꽃을 피워낸다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생각을 한 삶이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 아니랴.

     

 

부처님, 법당 밖으로 나가십시다 - 조영욱

 

티끌마저 다스릴 수 없는 얇은 가슴팍으로

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늘 나보다 높아 우러러 뵈는 부처님,

햇살 가득한 법당 밖으로 나가십시다

건들거리는 문고리 부여잡고 맴도는

바람 불러 아이들과 동무 삼아 주고

텃밭 갈아 씨붙임 한 뒤

마당에 둘러앉아 다담을 나눕시다

늘 정겹게 눈 내리깐 부처님,

우리 법당 밖으로 나가십시다

당신 가르침은 늘 마음이 있을 뿐인데

쓸 데 없는 문자 세워 문자 다듬느라

마음이란 마음 모두 빼앗긴 채

문은 문을 만들고 벽은 벽을 둘러쳐

말씀은 달팽이가 된 지 오랩니다

늘 말이 없어 더 두려운 부처님,

남에 손에 이끌려 산문에 든

어쩔 수 없는 이들까지도

당신이 굳이 보살피지 않거나

설법 베풀지 않아도 길을 찾을 테니

이제 말 많은 산문 밖으로 내려가십시다

알맞게 익은 곡차 중생들과 나누며

가슴에 산을 쌓은 하소연도 들어주고

서로 옳음만 있고 그름은 없어

아무 때나 틈만 나면 거저먹기로

딴죽걸기 맞불 놓기에 바빠

제 할 일 못한 채

생명을 생명으로 받들지 아니하는

시시비비도 원만히 가려 주시고

시궁창이 된 마음자리에 연꽃 한 송이

피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 부처님,

이제 법당 밖으로 어서 나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