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최기종 시인의 학교시편

김창집 2016. 10. 1. 11:19



어제 작가회의에서 주최한

'시낭송의 밤' 행사 뒤풀이에서

최기종 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났다.

 

2012년 한국작가회의에서 기획해서

임진각에서 강정마을까지 걸었던

글발글발 릴레이 도중,

목표작가회의 대표로 참가자 일행을 이끌고

카페리 편으로 행낭을 메고 와

나에게 넘겨주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목포에서 수송된 세발낙지를 안주로

자정까지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이제는 전남 민예총 이사장을 맡아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이다.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어

오름에 같이 오르자 약속하고 헤어졌다.

 

최 선생님의 학교 시편은

남다른 교육철학이 담겨 있어 쉽게 감동한다.


 

공부해서 남 주자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좋은 대학 가려고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

엄마가 좋아하니까

등등 이유야 많다.

그래서 내가

남 주려고 공부하려 하니까

그건 아니라고 야단법석이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공부해서 어떻게 하지?

의사가 되어서

과학자가 되어서

기술자가 되어서

누구를 주느냐고 물었더니

이놈들 고개만 갸웃거린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공부해서 남 주는 거라고 퉁쳤다.

        

 

어떤 농담

 

이런 아이가 있었다.

너무 착실하다고나 할까

정도가 지나치다고나 할까

1년 내내 결석 지각 조퇴 한 번 안 하고

교칙도 칼같이 지키고

지시 한 번 어긴 적도 없는

이런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 보고

내일은 10분만 지각하라고 하니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쯤 결석해도 좋다고 하니까

그 아이 하는 말이

선생님! 선생 맞아요?”

        

 

결점

 

미현이 눈 아래

검은 점이 깨알만하게 돋아 있다.

미현이는 그것이 눈물점이라며

팔자 드세게 한다며

나중에 콕 파내겠단다.

그런데 옆 짝 우연이는 사랑점이라며

그것이 사랑님을 끌어내는 매직이라고

절대로 파내지 말라고 한다.

 

지우고 싶은 방점이

바로 화룡점정이었다.

미현이 눈 아래

검은 그 수점이

미현이를 미현이답게 했다.

        

 

칭찬 아닌 칭송

 

야간자습 당번하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몇 명밖에 없다.

이상해서 물어 보니

가수 소방차가 온다고

작정하고 몰려갔다는 것이다.

이것들, 집단 모의해서 도망친 것이다.

기가 찰 일이다.

남아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것들, 의기양양하다.

도망친 아이들을 벌주라며

목이 한 자나 길어져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청년 맞아?’

그래도 잘했다고 상점을 주었다.

        

 

유리창

 

아이들이 유리창을 닦는다.

창문을 하나씩 맡아서

호호 입김을 불어 넣으면서

쓱쓱 지극정성이다.

저렇게 닦으면

비는 소원 다 이루어지겄다.

운남이는 운동장에 빠져서

창식이는 엠피스리에 빠져서

와니는 옆 짝과 수다를 떨어대면서

푸른 세상을 닦고 닦는다.

저만하면 여기와 저기가 같아지겄다.

흰나비들 팔랑팔랑 지나가겄다.

옛날에 나도 그랬다.

까까머리 그 아이

등 뒤에 누군가 느껴져서

푸른 세상 덧칠하고 덧칠했다.

        

 

뽐뿌질

 

선생님, 변기 막혔어요. 어떻게 좀 해줘요.”

해성이가 구원 요청이다.

그래, 어디 가 보자.”

뚫어뻥 챙겨서

뽐뿌질 야무지게 했다.

그런데 이게 요지부동이다.

아니, 요 정도면 뚫려야지.”

이번에는 쇠꼬챙이로 길게 찌르고 후비고 나서

다시 뽐뿌질 했다.

그래도 이게 위로 반발한다.

아니, 너도 불통이냐? 이거 힘들어 못해 먹겄다.”

힘들어서 뚫어뻥 내려놓으니

해성이가 받아서 뽐뿌질 열심히 한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똥물이 요란하게 소용돌이친다.

선생님, 불통 가셨습니다.”

 

     * 최기종 시집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삶창, 2015.)에서

         사진 : 요즘 한창 익어가는 석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