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물숨’ 영화 봅디강

김창집 2016. 10. 3. 12:54



2016929일 목요일 비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려 바깥에서 활동할 수 없는 날씨라, 며칠 전부터 계획했던 영화 물숨을 보러 극장에 가기로 했다.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영화관으로 발길이 뜸했는데, 마지막 나들이인 지난 1월초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鬼鄕)’ 후원자 시사회에 다녀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CGV제주에서 처음 소개되는 물숨12:15부터 1차 상영이라 오전 시간 몇 가지 일을 마치고, 이른 점심을 먹은 후에 천천히 영화의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걸었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 영화는 우도 해녀들의 삶을 오랜 기간 촬영한 것을 편집했다는데,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바다 속의 아름다운 풍경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린다.

    

 

   극장 안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텅 빈 느낌이었고, 나까지 7명이 관객으로 상영의 시작되었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우도의 푸른 바다, 나는 이 섬을 좋아해서 1년이면 서너 차례씩 가본다. 정겨운 오름,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동굴이 있고, 사방이 각기 다른 빛의 바다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돌아보면 느끼는 감흥이 다르다.

 

   맑은 바다 속은 예상대로 미역과 감태, 모자반이 탐스럽게 자라고, 그 해초 속에는 자리돔을 비롯한 용치놀래기와 놀래기 들이 한가로이 유영한다. 그 속을 검은 해녀복을 입은 잠녀들이 오리발을 놀리며, 인어처럼 들어가 돌틈을 뒤져 소라를 한 움큼 잡고 올라와 호오이-’ 숨비소리를 내며 숨을 쉬고는 수확물들을 망시리에 담는다.

    

 

   자연스레 중, 고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로 돌아간다. 배고프던 시절, 바다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보고였다. 물안경을 갖추어 작살을 들고 물속으로 잠수해 해초 사이를 뒤지면 문어를 비롯해 여러 가지 고기들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해녀들이 쉽게 잡았던 쥐치를 비롯해 광어, 서대 등이 쉽게 쏘을 수 있는 고기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머리가 커졌다고 해녀들이 작업 현장까지 진출했다.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역정 내는 분들도 있지만,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면 어디에 고기가 많다고 가리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상군 잠수 작업장까지는 갈 수 있어도 숨이 짧아 거기서 고기는 쏘지 못하고 물속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해녀들은 돌 틈을 뒤지거나 알맞은 돌을 들춰 전복이나 소라를 따고 숨어있는 문어를 잡는다.

    

 

   이번 영화에서 썰물이면 조간대에 드러난 곳에서 살던 성게와 군소를 바다 깊은 곳에서 잡는 걸 보고, 지금은 저들도 살려고 깊은 곳으로 옮겨 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제주 본섬 대부분의 바다는 농사 현장에서 흘러들어오는 제초제, 농약, 비료 등의 영향과 해안에 자리 잡은 양식장의 영향인지 해초가 잘 자라지 않은 갯녹음 현상이 심하다. 텅 빈 바다에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지 않아 갈수록 해산물이 줄어들고 고기가 안 잡힌다.

 

   그러나 우도 바다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아직도 저런 바다를 유지하고 있는 게 자랑스럽다. 요즘 관광객 증가와 차량 증가로 섬 위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종량제라도 실시하지 않으면 언제 우도에 갯녹음이 덮칠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해산물 생산량이 줄고 젊은 여성들이 섬을 떠버려 해녀들이 점점 줄어가는 추세란다.

    

 

   과거에는 척박한 화산회토에서 짓는 농사가 시원치 않아 바다 속에서 식량과 생활비를 건져내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물때가 안 맞고 바다 날씨가 안 좋으면 자연히 물속으로 가지 못하고 밀린 농사일을 해야 하다보니까 여성의 생활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딴 데서는 돈 한 푼 날 곳이 없으니까 궂은 날씨나 겨울에도 바다로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럴 때면 사고도 잦다.

    

 

    물로나 벵벵 돌아진 섬에/ 삼시 굶엉 물질허영

    한 푼 돈도 돈일라렌/ 두 푼 돈도 돈일라렌

    이여도 사나 잘도 간다 으쌰으쌰

    한 푼 두 푼 / 모아 논 돈은

    서방님 술값에/ 다 들어간다

    음음 이여도 사나 잘도 간다 으쌰으쌰

 

   민요 해녀노래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대목이다. 지금은 동력선이 대부분이지만 과거에는 테우나 작은 목선을 저어 멀리 떨어진 작업현장으로 오가야 했다. 그러면 해녀 스스로가 마주 서서 노를 젓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때에 맞춰 부르는 노래가 해녀노래 네 젓는 소리.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거기에다 현장을 오가며 노를 젓는 일까지 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는 말을 안 해도 환하다. 그래서 채록되는 해녀노래는 대부분 네 젓는 소리일 수밖에.

    

 

   널른 바당 앞을 재연 (너른 바다 앞을 재어)

   한 질 두질 들어가난 (한 길 두 길 들어가니)

   칠성판이 왓닥갓닥 (칠성판이 왔다갔다)

   저싱질이 왓닥갓닥 (저승길이 왔다갔다)

       이여도 사나 이여도 사나

 

  칠성판(七星板)()의 바닥에 깔거나 시신 위에 덮는 얇은 널조각이다. 산소통 없이 깊은 바다 속을 들 어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편안하기는커녕 숨이 막히고 물안경에 조여드는 압력 등에 의해 정말 눈앞에 저승길이 어른거린다. 사람은 숨이 막히면 사망에 이른다. 그래서 그런 압력을 이기고 숨을 오래 참는 능력을 타고 나지 않으면 해녀 작업은 하기 힘들다. 그래 숨이 다 차지 않고 조금 남았을 때 물 위로 올라오라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고기를 쫓거나 물건을 캐다 못 캐고 올라갔다 오면 찾지 못하기에 그걸 캐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사고를 당한다. 정말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이 다해 바닥을 박차고 올라오는 시간의 지루함이란? 그래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 해녀들은 거의 만성두통증세가 있어 두통약을 달고 산다.

 

  영화 속에서는 촬영 기간에 실제로 바다에서 사망사고가 있었는데, 유족들의 허락으로 영화 속에 그 내용을 삽입할 수 있었고, 스토리텔링에 의해 마지막 부분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해녀작업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담음으로써 삶과 직결된 으로 의 한 단면을 그리려 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 주말은 해녀박물관을 비롯한 제주 해안 일원에서 해녀축제가 열렸다. 해녀축제는 사라져가는 해녀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무형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며 열렸던 행사다. 그간 해녀와 그들만이 갖고 있는 문화의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에 무형유산 국가목록에 등재되었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대상 신청종목으로 선정돼서, 20143월에는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해 11월 중으로 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쪼록 이 영화가 대박나 해녀의 삶을 널리 알리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데도 한몫했으면 좋겠다


  * 사진은 영화 속 장면이고, 아래는 수족관의 소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