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문학' 초대시 - 나태주
‘산림문학’에서는 2016년 가을ㆍ겨울호 초대시로
나태주 시인의 시 8편을 실었다.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시집 ‘대숲 아래서’ 등 36권, 산문집 ‘꿈꾸는 시인’ 등 10여권,
동화집 ‘외톨이’,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등 5권,
사진시집 ‘풀꽃향기 한 줌’ 등 2권, 선시집 ‘추억의 묶음’ 등 4권 등
총 93권을 출간했으며, 흙의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사)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공주문화원장,
초등학교 교사 재직(1964~2007),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시와 함께
가을 풀꽃 사진을 곁들인다.
♧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그립다
쓸쓸한 사람,
가을에
더욱 호젓하다
맑은 눈빛,
가을에
더욱 그윽하다
그대 안경알 너머
가을꽃 진자리
무더기, 무더기
문득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
그립다.
♧ 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 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 눈부신 세상
멀리서 보면 때로 세상은
조그맣고 사랑스럽다
따뜻하기까지 하다
나는 손을 들어
세상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자다가 깨어난 아이처럼
세상은 배시시 눈을 뜨고
나를 위해 웃음 지어 보인다
세상도 눈이 부신가 보다.
♧ 외롭다고 생각할 때일수록
외롭다고 생각할 때일수록
혼자이기를,
말하고 싶은 말이 많은 때일수록
말을 삼가기를,
울고 싶은 생각이 깊을수록
울음을 안으로 곱게 삭이기를,
꿈꾸고 꿈꾸노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빠져나와
키 큰 미루나무 옆에 서 보고
혼자 고개 숙여 산길을 걷게 하소서.
♧ 시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 풀꽃 : 위로부터 1. 산국 2. 쥐꼬리망초 3. 당잔대 4. 이질풀 5. 이고들빼기
6. 용담 7. 한라돌쩌귀 8. 구절초 9. 물매화 12. 산비장이 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