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洪海里 시인의 시와 박주가리

김창집 2016. 12. 26. 23:54


지는 꽃에게 묻다

 

지는 게 아쉽다고 꽃대궁에 매달리지 마라

 

고개 뚝뚝 꺾어 그냥 떨어지는 꽃도 있잖니

 

지지 않는 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

 

과거로 가는 길 그리 가까웁게 끌고 가나니

 

너와의 거리가 멀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냐

 

먼 별빛도 짜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냐.

        

 

우리들의 말

 

거리를 가다 무심코 눈을 뜨면

문득 눈앞을 가로막는 산이 있다

머리칼 한 올 한 올에까지

검은 바람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부끄러운 알몸의 시대

그 어둠을 가리우지 못하면서도

그 밝음을 비추이지 못하면서도

거지중천에서 날아오고 있다

한밤을 진땀으로 닦으며 새는

무력한 꿈의 오한과 패배

어깨에 무거운 죄 없는 죄의 무게

깨어 있어도 죽음의 평화와 폭력의 설움

눈뜨고 있어도 우리의 잠은 압박한다

물에 뜨고 바람이 불리우고

어둠에 묻히고 칼에 잘리는

나의 시대를

우리의 친화를

나의 외로움

우리의 무예함

한 치 앞 안개에도 가려지는 불빛

다 뚫고 달려갈 풀밭이 있다면

그 가슴속 그 아픔 속에서

첫사랑 같은 우리의 불길을

하늘 높이 올리며 살리라 한다.

    

 

 

가벼운 바람

 

사람아

사랑아

외로워야 사람이 된다 않더냐

괴로워야 사랑이 된다 않더냐

개미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얼음판 같은 세상으로

멀리 마실갔다 돌아오는 길

나를 방생하노니

먼지처럼 날아가라

해탈이다

밤안개 자분자분 사라지고 있는

섣달 열여드레 달을 배경으로

의 무게가 싸늘해

나는 겨자씨만큼 가볍다.

    

 

 

황태의 꿈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샌 나의 꿈

갈갈이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 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첫눈

 

하늘에서 누가 피리를 부는지

그 소리가락 따라

앞 뒷산이 무너지고

푸른빛 하늘까지 흔들면서

처음으로 처녀를 처리하고 있느니

캄캄한 목소리에 눌린 자들아

민주주의 같은 처녀의 하얀 눈물

그 설레이는 꽃이파리들이 모여

뼛속까지 하얀 꽃이 피었다

울음소리도 다 잠든

제일 곱고 고운 꽃밭 한가운데

텅 비어 있는 자리의 사내들아

가슴속 헐고 병든 마음 다 버리고

눈뜨고 눈먼 자들아

눈썹 위에 풀풀풀 내리는 꽃비 속에

젖빛 하늘 한 자락을 차게 안아라

빈 가슴을 스쳐 지나는 맑은 바람결

살아 생전의 모든 죄란 죄

다 모두어 날려 보내고

머릿결 곱게 날리면서

처음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불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홀로 혼자서 빛나는 너

온 세상을 무너뜨려서

거대한 빛

無地한 손으로

언뜻

우리를 하늘 위에 와 있게 하느니.

    

 

 

절정을 위하여

 

조선낫 날빛 같은 사랑도

풀잎 끝의 이슬일 뿐

절정에 달하기 전

이미 내려가는 길

풀섶에 떨어진 붉은 꽃잎, 꽃잎들

하릴없이 떨어져 누운 그 위에

노랑나비 혼자 앉아

하마하마 기다리고 있다

절망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시인이여

슬픔도 눈물로 씻고 씻으면

수정 보석이 되고

상처도 꽃으로 벌어

깊을수록 향으로 피어오르는가

마음을 닦아 볼까

스스로 깊어지는 숲

속으로 들어가

흔적도 남기지 않는

바람을 만나네

무거운 마음 하나 머물고 있는

바위 속을 지나니

절정은 이미 기울어지고

풀 새 벌레 한 마리 들리지 않네

목숨 지닌 너에게나 나에게나

절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