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이애자의 모슬포 시편

김창집 2017. 1. 19. 19:28



모슬봉 호박꽃

 

맨땅에 퍼질러 익어 가도 좋으리

 

한 줄에 꿰어 자란 자매처럼 둘러 앉아

 

흑싸리 시월 단풍에 늙어 가도 좋으리

 

호박꽃도 꽃이라고 텃밭 한 쪽 밝히다

 

덩드렁 호박잎 넝쿨째 손을 펴서

 

일개미 가는 길목에 그늘이어도 좋으리

     

  

모슬포 1

    -비가

 

역사

-설운 대정님네

 

노역에 지친 억새무리 저 간곡한 손짓

종으로 횡으로 허우적허우적 격납고를 지날 때

뼈마디 하얀 저음에 되레 가슴 후비더라

 

신념인지 이념인지 죽어서도 못한 염

푸른 하늘 붉은 하늘 잿빛하늘 그 하늘

툭 하면 안색을 바꿔 무릎 꿇게 하더라

 

알드르의 바람은 늘 헛바퀴만 돌더라

화산 섬 끓는 속 시커멓게 게워낸 바람

그 바람 대정사람은 배설창지 다 알더라

 

신축 년 참수당한 이제수도 잊히더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삼의사비 가시밭길

엉겅퀴 봉두난발에 거꾸로 피가 솟더라

 

거짓말을 안 한다는 흙에다 마음을 심어

올 저 땡볕에 심은 데 또 심는 양배추모종

하늘도 모슬포에선 한눈을 팔더라

   

 

 

모슬포 2

    -연가

 

새도림,

-곱게 저승 가져시냐

 

눈 밟혀 못 가신가 마음 밟혀 못 보내신가

난장도 그런 난장 살암시난 살아져

저 햇살 꽂힌 족족이 피는 꽃이 아파라

 

고 작은 날개로도 봄바람을 실어와

송악산 어혈 삭이는 바람꽃 몸짓을 보라

지아비 떠난 그 자리 꽃 재롱이 아파라

 

이승의 바람소릴랑 귓등으로 흘리십서

보리 밥 한 술에도 꽉 막히는 오목가슴

괭괭괭 저승 길 닦는 꽹과리가 아파라

 

모슬포 들썩들썩 뒈싸진 저 바당을

오늘은 노을 달군 방어 잡이 배 두 척이

물주름 곱게 펴놓은 먼 길 앞이 아파라

   

 

 

모슬포 3

    -그 딜 누겐들 모르크냐

 

흙냄새 비린 냄새 땀 냄새 버무려져

웬만한 세파쯤이야 사람 사는 내음이려니

살 냄새 자리 젓 냄새 익는 밤이 짧더라

 

물 봉봉 가슴 봉봉 먹먹한 날 어찌 없으랴

물허벅 장단이면 어느 장단을 못 맞추랴

대정 땅 대정몽생이 반 치키고 반 하시하더라

 

역풍에 쓸려 와서도 북향으로만 돌아앉더니

탱자나무 가시바람 유배 땅 그 바람도

추사의 붓 끝에 멈춰 세한도로 돋보이더라

 

후덕한 모슬봉이 치마폭 인심이더라

송악산 엎딘 내력 등만 밟고 가더라

또 옵서하지 않아도 모슬포가 그립다더라

   

 

 

모슬포 칠월칠석

 

비 오네

절뚝절뚝

짝 그른

팔다리 끌고

 

홀아비 바느질 같은 낮은 밭담 넘어 와

 

솔째기

문 두드리며

젖은 발로

오는 혼백

 

콩 볶듯

맬젓 담듯

섯알오름의 슬픈 직유

 

죽기 살기 살다보면 몽글기도 하겠건만

 

아직 이 비린언어를

삭히지 못한 일

 

모슬포 바람살이

기죽을 틈이나 줍디가

 

마디 곱은 어멍 손

별떡 달떡 빚어놓고

 

배롱이 초저녁부터

마당 한 뼘 밝힙디다

 

오십서

칠월칠석

까마귀 다 아는 제사

 

직녀 표 수의 입고

견우 씨 소등을 빌려

 

산발한

늙은 팽나무

기다리는

큰 길로

 

 

*이애자 시집 하늘도 모슬포에선 한눈을 팔더라’(시와 표현, 2016)에서

                                                                 사진 : 모슬포 주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