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봄을 부르는 바다와 해녀

김창집 2017. 3. 8. 10:02



작년 1130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이번에는 해녀가 우리나라 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었다.


지난 토요일엔 올레 18코스를 걷다가

화북 바다에서 숨비소리가 들려 바라보았더니,

미역을 따는지 가에서 자맥질이 한창이다.

 

지난 달 26일에는 좋은 날씨를 맞아 올레 3코스

신산, 신풍, 신천, 표선 바다에서 해녀들이

미역을 따고 있었다.

 

봄은 벌써 바다에도 와서

물빛이 달라져 있었다.

     

 

 

해녀 - 강정식

 

곤고한 날들만큼이나 헤어진 검정 물 옷 입고

해풍에 등 대고 기다리는

푸른 바다로 물질을 간다

질척대는 남편에게 몸을 주듯

철썩이는 물살에 내어 주고

자맥질해 내려간다

갈매기조차 놓고 간 시간 속으로

파도에 밀려온 날들만큼이나

칙칙하고 어둑해진 물속

죽고 사는 것이

숨 한끝 밖인 그 가장자리

천년을 가라앉아 기다리고 있는

바위 문 두드려 본다

과거와 지금 사이에서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물밑과

기다리는 이 없는

날들 사이를 들락이면서

눌러 참았던

목쉰 날숨소리만 길게

대답 없는 바다를 부른다

갈매기를 부른다

 

차가운 물살

그녀를 끌어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제주의 은빛 물결 - 김명희(惠園)


파도 소리 물새 소리

남해 바다 저 끝까지

구름으로 떠나가고

 

등 뒤엔 높이 솟은 한라산

눈앞에는 펼쳐지는 푸르른 바다

어둠은 사라지고

아침이 얼굴을 내민다

 

제주 해녀들의 끈질긴 삶과

환희 어린 바다의

숨결 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제주 바다의 은빛 물결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빛나고

울창한 나무들은

꽃 그늘 속으로

숲 그늘 속으로

나를 부른다.

     

 

미역국 - 이향아


미역국을 뜬다

흰 대접에 담기는 울컥한 바닷소식

부표처럼 몸이 떠서 어디로 가고 싶다

개펄보다 질긴 살에 문신을 새겨

갈기 푸른 말을 타고 옛날에 닿고 싶다

미역국을 뜬다

맑은 조선 간장 간간한 맛을

바람 매운 지상의 조촐한 아침 상에

철갑했던 가슴의 빗장을 풀면

멀리 나가 소식 없는 어부도 몇 몇

연꽃으로 돌아온 해녀도 있어

세월이여, 나를 용서하여라

진주 산호 거느린 수심을 굽어

눈물처럼 미끄러운 미역국을 마신다

헝크러진 머리채 그냥 헤뜨리고서

맘 편안하다

오늘 아침은

   

 

 

하도리 해녀군상* - 권갑하

 

등 뒤로 바르팟* 흰 살결 아롱아롱 피워 올리는

북제주군 하도리 해안도로변 해녀들은

함부로 그 날 얘기를 풀어 놓지 않는다.

 

뿔 돋은 소라 껍질 밀물 썰물 모래가 되고

젖부른 엄마는 자꾸 아이 젖을 물리지만

현무암 검은 가슴엔 하얀 포말이 섬뜩하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혼백상자 등에 지곡

가슴 아피 두렁박 차곡

한질 두질 들어가난

저승길이 왓닥 갓닥

이여싸나 이여싸나*

 

머리엔 흰 수건, 두 손엔 빗창과 호미

-이 호-이 숨비질소리 수평선 띄워 놓고

일 천여 분노의 노래 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날 밤 덩치 큰 해일이 섬을 다 삼켰다

불턱*에 갈무려 둔 불씨마저 다 지우고

바다는 고요가 잠든 밤 속으로만 흐느꼈다.

 

---

* 제주시 하도리 해변에는 현무암으로 조각된 5명의 해녀가 젖먹이 둘을 안고 있는 해녀군상이 세워져 있다.

* 바다밭

* 제주민요 해녀의 노래일부

*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에 대항했던 해녀항쟁 이야기.

* 바닷가에 둥그렇게 돌담을 둘러 물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게 한 곳.

     

 

마라도에서 - 권경업


돌아와야 할,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사투리 왁자하니 두고 떠난 뱃머리

오늘도 하루해는 저물었다.

 

저승 같은 밤바다 안개 속 자욱히

소리를 빛 삼아 길잡아 오라며 우는 무적(霧笛)

갈옷, 메마른 눈물에 적시던 사월

이어도 찾아 떠난 어진 이들 향해

웃날들거든 등 푸른 고기떼라도 되어

먼발치 물길이나 휘돌아 가라고

긴 한숨 끊어 쉬며 부르는

늙은 해녀의 초혼가였네

 

등대지기 뼘만한 텃밭에서

평지꽃 꽃대궁이 웃자랏을 보리 대신

보름치에 젖을 때


---

*평지꽃 - 유채꽃의 우리말

*웃날들다 - 날이 개다

*갈옷 - 무명베에 떫은감으로 물을 들인 연한 갈색의 제주 토속 옷

*보름치 - 음력 보름께 비나 눈이 오는 날씨

   


숨비기꽃 - 최원정

 

토산 앞바다, 법환포구

주상절리 가파른 언덕까지

바닷가 짠 내음을 맡으며 살아가는

질긴 목숨, 해녀의 꽃

 

꽃잎 비벼 귀 막고

잎 따서 물안경 닦아

함께 자맥질하던

아름다운 여인의 꽃

 

어디서 들리는가

아득한 숨비소리

 

잠녀(潛女)의 영혼으로

피고지고 피고지고

지칠 줄 모르는

, 바닷가의 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