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양목에도 꽃은 핀다
어제 아침 산책에서
어디선가 꽃향기가 풍겨
다가가 본즉
이 회양목 꽃이었다.
겨울에 강원도 영월
단종 유배지 청령포에 갔을 때
절벽에서 겨울을 나는 회양목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 꽃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식물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이
회양목은 꽃이 안 핀다고
아직까지도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 회양목에도 꽃은 핀다 - 백우선
너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피운 꽃을 오늘 아침 나는 보았다
생강나무, 산수유보다 먼저 피운 네 꽃을
오늘 아침 생전 처음 우연히 보았다
네 꽃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 곁에서
네가 피운 꽃을 지나치며 또 보았다
화단 가 잘리고 잘려 동그마한
앉은뱅이 네게서 꽃을 보았다
상록의 잎 위 새 잎인 듯 황사인 듯 피어 있는
바람도 돌도 없는 깊은 눈을 보았다
열매도 잊은 듯한 흔적만의 꽃,
너의 까마득한 마음의 끝을 보았다
겨울을 살아낸 상록잎에 몸 모아 내어주는
꽃의 자리를 나는 보았다
♧ 저 키 작은 회양목이 - 주용일
회양목, 저 키 작은 나무도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정원 담벽 밑에 쪼그려 앉아
햇볕을 느끼고 바람과 입맞추며
제 삶을 기쁨으로 채우고 싶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건 느끼는 일
온몸으로 서로를 나누는 일,
봄날 저 무툭툭한 회양목이 작고 여린 꽃 피워
제 속의 향기 뿜어 벌나비를 부른다
벌나비와 따스한 한낮 온몸으로 뒹굴고
그 온기로 열매 맺어 새들을 부르려 한다
또 저 키 작고늘 푸른 회양목이
사방 가득한 꿀내음 풀어내어
내가 없고 제가 가 없는 무아지경으로 나를 끌고 간다
나무도 마음의 파문을 느끼는 걸까
햇볕 아래 저를 열어 나를 맞이하는,
회양목과 나는 지금 은밀한 연애 중이다
제 향기로 흙살 위에 내 무릎을 꺾어놓고
아예 숨을 컥컥 막히게 만드는
이른 봄 저 키 작은 회양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