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고은영의 3월시와 봄까치꽃
♧ 3월, 연둣빛 언덕
3월 언덕에
꿈의 빗장을 풀고
상큼한 바람이 머문다
어둠의 그늘을 벗어
노래하는 눈부신 햇살의 춤
시간의 회로를 돌리고
다가선 발걸음마다
물오른 나무마다
꽃, 꽃들이 핀다
견딜 수 없는 음지마다
그래도 살겠다고
생명을 틔우는
이름 없는 들풀조차도
살같이 고운 연둣빛
여린 잎마다
안개가 머물다 간 곳에
이슬 머금은 세수를 하고
아지랑이 아른대는
저, 해 말간 미소
♧ 3월의 밀어(蜜語)
그대 향한 사랑이 시들지 않음을 기뻐하는 슬픔이여
그대 향한 영혼을 거두지 않는 애틋함이여
모든 것이 변하여 죽어간다 하여도
영혼의 정수리에 심어 놓은 한 그루의 나무로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대가 선들 들어선 날부터
그대의 그늘에 쉼을 얻고 그대의 염려에
그래도 나는 상한 심령을 위로받았나니
그대 이름 석 자를 꽃 피우는 봄이 있었고
그대 이름 석 자를 탐미하는 여름이 있었고
그대 이름 석 자를 음미하는 가을이 있었고
그대 이름 석 자를 아파하는 겨울이 있었다
어느 이름 없는 오후
상수리나무 끝가지를 희롱하다
머리칼을 간질이는 저 바람은
몇 천 년을 넘어 내게로 온 것이냐
태초부터 시작된 것이냐
억 겹의 영속(永續)에도 질리지 않는지
바람은 자꾸만 새롭게 현화(現化)하며 세상을 버릴 줄 모른다
그리하여 나도 가끔은 가볍게 스친 인연조차 그리워진다
억센 바람의 날개 속에 그대가 묻어온다
3월의 광장에서 햇살이 프리즘을 투과하고
영롱한 빛으로 굴절되어 머물다
다시 아픔으로 곤두박질치는 기억의 창가에 서면
공허한 허파로 숨을 쉬고 제 살을 찢으며
피어나는 연록의 잎들조차 상처로 가득하다
몇 날 못하여 시들어도
다시 사랑을 위하여 일어서는 저 끈질긴 행보
스쳐간 것들은 또 얼마나 많았느냐
가득한 상처는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신만큼 상처 위에 선 부활은
상큼하고 지극히 아름답다
이제 겨울은 갔다
설렘의 꽃잠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의 그리움에
보고픔의 밀물로 그대는 다시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햇살이 되어
아픔으로 혹은 기쁨으로 환희로 감사로
서글픈 내 안에 충일하게 흐를 것이다
♧ 3월에 내리는 눈
비애처럼 3월의 언저리를
맴도는 끈질긴 미련
중심에서 밀려나는
마지막 애증이다
떠나가다 다시 돌아보는
서러움의 연가다
마지막 시린 얼굴로
시간 위에 각인 시키고픈
아픈 상흔이다
서걱대는 바람의 등을 타고
가슴에 한으로
반짝 타오르는 촛불처럼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노라고
뇌까리는 서러운 발자국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날 잊지 말라는
서글픈 유언 같은 마지막 편지다
눈물의 덩어리다
♧ 3월 마지막 날 밤의 양평 강가
어둠 내린 양평 강가엔 너무도 고요하여
바람도 오간 데 없고 인적없는 적막 속에
강물도 숨죽여 울고 있더라
정 염으로 뜨거워진 몸을 식히려고
강가에 줄을 선 피곤한 불빛들이
투신하듯 강물에 유영하며
밤이 새도록 물결에 지친 몸 담가
미친 듯이 문지르고 닦아내어도
뜨거운 육신은 식을 줄 모르고
지친 몸, 물결에 누워 하늘을 보니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하늘은 살아 숨을 쉬고 있더라
그래, 죽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살아야지 목숨이 붙은 그날까지는
천년만년 살아남아야지
사랑도 가고 인생도 물 흐르듯
그렇게 굽이굽이 흘러 떠나라 하라
뜨거운 몸이라고 어느 날엔들 식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