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서상만 '산림문학' 통권25호 초대시

김창집 2017. 3. 29. 08:46


사단법인 한국산림문학회에서 내는

산림문학통권 제25, 2017년 봄호,

초대시로 서상만 시인의 시

풀꽃8편이 실렸다.

 

서상만 시인은

경북 포항 호미곶 출생으로

1982한국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간의 사금파리’,

그림자를 태우다’, ‘모래알로 울다’,

적소謫所’, ‘백동나비’, ‘분월포芬月浦’,

노을 밥상등이 있다.

     

 

풀꽃

 

작은 바위 틈새에

올해도 고운

네 얼굴을 보았구나

 

세상은

나를 몰라보는데

 

금세 나를

알아보다니 고맙다

     

 

솔바람 향기

 

이십 년도 넘게

소나무를 심느라

다 늙은

빈털터리 우리 형님

 

스치는 잔바람에도

입을 여는

, 솔바람 향기가

그의 유산이다

   

 

 

나무시장

 

도타운 아랫도리도 벗고

고추도 뭐도 덜렁 내놓고

꽁꽁 묶인 채

봄 유곽에 몸 팔러 왔다.

 

수도 없이, 호객꾼 입에

제 이름이 퍼렇게 물려도

눈치만 보면 누운

벌거숭이들

 

기절 찬 그의 눈에

이 세상, 그 누구와 맺은

얼마만의 약속 때문일까

가지마다

꽃봉오리의 꿈이

봉긋봉긋하다

     

 

불문율不文律

 

숲속,

나무 잎사귀의 떨림이

새 울음을 닮았다

새 떼에게 집을 빌려주더니

새와 나무는

그렇고 그런 사인가

 

혈연이 아니면 음색도 다른데

 

나무의 가슴으로 드나드는 건

저 새들 뿐

 

어린 새들이

유두 같은 보얀 꽃망울에

유치幼齒를 문지르며

왁자지껄 웅석을 부린다

 

그들만이 알아듣는 불문율처럼

잎 소리 새소리가 한 음색이다

   

 

 

 

   최소한 10년은 넘긴 나무라야 겨우 입신立身에 들었다고나 할까 헤진 삶을 깁듯 자욱한 안개 뿌리도 매만지며 더구나 저 나뭇가지들이 비바람에도 휘적휘적 춤추거나 탄식하듯 흐느끼는 것은 스스로 꺾이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겠지만 실은 그 눌음이 신운神韻이요 그 그늘이 심상心象이고 그 유연한 춤이 압권이다 노련老鍊하단 말 애벌갈이처럼 함부로 나불대면 어디 쓰나

     

 

풍목(風木)

 

키 크는데 정신 팔린 나무

그만 열매 맺는 것을 잊었다

눈치 없이 웃자라

제일 먼저 아랫도리가 잘리고

 

가파른 비탈을 붙잡고 살아가는

더러,

올곧은 선비목도 있었다

 

서쪽 계곡 응달

염염하게 자란 볼품없는 소나무

천년 장수목이 될 줄 그 누구도 몰랐다

 

어느 것은 욕망으로 집을 짓고

어느 것은 영생하러 관을 짜고

어느 것은 오기로 화목火木이 되고,

 

아무것도 탓하지 않는 나무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벼랑이면 엎드려 산다

 

나는 작고 일그러진 나무

옥토만 부러워하며, 차일피일

바람을 피해 살았다

 

내 사는 곳이 박토라고,

정작 작은 그늘 하나 내려놓지 못했다

     

 

수목장을 꿈꾸며

 

영혼이라도 떠돌지 않고 안주하려면

실은 수목장이 좋아 보이네, 그것도

손 안 타는 준령에 걸터앉아 좀 못생겨도

향 깊은 소나무 그늘이면 어떨는지

 

훨훨 허공 일도 편할 거고

이 세상, 소란 떠는 잡새소리 멀고

잘못 산 일생, 들통 날 염려 없는

저녁노을 낭자하게 묻힐 곳 더욱 좋지

 

역광에 눈 비비며 멀리 뻐꾸기 울음 듣는

혹 분월포에서 대동배 가는 돌산마루

북새구름 물고 앉은 칡넝쿨 사이

창천 뚫린 갈매기 여인숙 같은 곳, 좋지

 

그 생각도 못하고 남한강 묘역,

먼저 간 아내 옆 자리를 고요로 비웠네

명당 같은 말 다 실없는 소리

떠나는 자는 말이 없으니

   

 

 

수양버들

 

이 봄,

내 시에도 물이 올랐으면

낙낙하게 휘어지는

낭창낭창한 시,

은유의 은어 떼가 하얗게

나를 몰고 가는

 

그런

부드러운 회초리

 

의 핏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