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우리詩' 5월호의 시와 찔레꽃

김창집 2017. 5. 9. 07:56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5월호가 배달되었다. 주요목차와 함께 시 몇 편을 골라 요즘 한창 피고 있는 찔레꽃과 같이 올린다.

 

주요목차

 

*권두 에세이 | 채들

*신작시 22| 김석규 김영호 김인호 김판용 조현석 박원혜 유수경 이규홍 김미외

                         김현희 김세형 장성호 주선화 임미리 김완 한문수 박병대 방화선

                         채영조 황서희 송미숙 홍성재

*동시 특집 14| 임보 조성국 오인태 이우식 나병춘 이민숙 김성범 서금복 이지담

                         방수영 남석우 정유광 황병숙 송경숙

*기획연재 인물| 이인평

*신작 소시집 | 차영호

*테마 소시집 | 이동훈

*임보의 연시집 일역 | 고정애

*시평 | 유진

*한시한담 | 조영임

   

 

동화 속으로 - 김석규

 

  초등학교 시절의 교실 뒤쪽 벽면에 색종이로 오려 붙인 멧새알 토끼똥 매미껍질 강아지 오리새끼가 문득 그리워지는 해거름녘

 

  놀빛 타는 얼굴로 돌아오는 시인의 새끼줄엔 황금지팡이 황금종 황금딱따구리 황금두꺼비 황금송아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불의 계곡(Valley of Fire)* - 김영호

 

일억 오천만 년 전

바다와 태양이 혼례를 한 후

사천이백 에이커의 사막 위에

불의 신이 세운 바위산 조각예술

사랑의 기념탑들이다.

바위들에서 선사시대인들의 근육이 꿈틀댄다.

원주민 인디언들의 나체와 얼굴이 움직인다.

붉은 암벽 구멍들에서 사람 잇몸냄새가 난다.

바위 주름 속에서 인디언 담배연기가 솟는다.

넓은 암벽에 새겨진 상형문자들

사슴가족이 소풍을 간다.

도마뱀들이 노래자랑을 한다.

코요테들이 달리기를 한다.

토끼들이 방울뱀들과 술래잡기를 한다.

인디언 여인들이 바구니와 짚신을 만든다.

 

자연은 사랑을 한다.

우주가 사랑을 한다.

사랑은 예술을 낳는다.

 

내가 사막과 불이 되었다.

산양들이 나를 동생이라고 부른다.

나의 눈썹 위에 구름이 시를 쓰고 지나간다.

나의 얼굴에 바람이 시를 쓰고 지나간다.

나의 가슴팍에 구름과 바람의 상형문자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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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네바다주의 국립공원 제1.

     

 

지리산 솔침 - 김인호

 

  뒷산 바위에 구부정히 짜란 소나무 마음에 들어 집으로 모셔오려다 그만 한쪽 눈을 찔렸다

 

  밤 내 눈물이 흐르고 눈을 뜰 수가 없어 눈이 멀지 않을까 걱정하다 웬만해진 이틀째 문득 정신이 들었다

 

  제 밖의 것을 제 안으로 들이려는 탐욕에 대한 일침, 지리산의 따끔한 솔침이었구나

   

 

 

춘설春雪 - 김판용

 

늦바람에 서방질이다.

골목마다 할랑할랑 옷고름 풀어헤치고

헤프게 웃음을 흘려도 누구 하나 꿈쩍 않는다.

화냥질한 여편네는 여자도 아닌가?

결국 어디 들지 못하고 소박을 맞는데

그 병도 전염인지

밤새 빈 매화 가지가 환히 밝았다.

잉잉거리며 몰려드는 남정네들

분주히 열고, 맞아들이는 연분이더니

, 그 여자처럼

하얗게 분분히 또 쫓겨나고 있구나.

   

 

 

내일은 봄 - 박원혜

 

베이스캠프가 헐렸다 헐린 자리에 고요한 실내가

환히 나타났다 무서운 흑암의 전투는 끝나고 긴 끝

오솔길에서 옅은 샘물이 흐른다

 

한때 채울 수 없었던 허기가 먼 공중으로 날아가고

내 몸을 존중한다는 내 혓속의 오랜 속삭임은 이미

온기로 충만하다

 

한 국가가 사살되기 전 이미 우리들이 그녀를 죽였다

저녁 산책 속에서 눈을 감고 등불을 보면

하루 밥상 지붕이 세상 밖에서 흔들거린다 파랗게 타 들어가는

노을 소리가 새벽을 예언하고 있다 얼치기 소리로 새어나온

인생이라는 말이 조금씩 뜨거워질 때 비로소

어둠에 기댄다

   

 

 

상리연꽃 - 주선화

     -겨울

 

익으면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지 보여주듯

최대한 깊이깊이 고개 숙인 연은

무릎을 꿇고

석 달 열흘 문 씨방을 물속에 묻는다

빠르면 이듬해

늦으면 몇 백 년 몇 천 년을

땅속에서 꿈을 키울지

연은 안다

아는 것이 무서운 꿈은

오늘 하루는 어떻게 견딜지

세찬 눈보라에 싸한 몸을 감싸 안고

더 깊이 땅속으로

땅속으로 파고든다.

     

 

감옥으로 들어간다 - 김완

 

네 개의 문을 열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두 개의 철창문을 통과하여

이층 계단을 돌아 올라 간다 다시

두 번 카드 키를 열고 들어가는 곳

거기 여행자의 쉼터가 있다

수많은 거울이 나를 비춘다

기괴한 형상의 내 모습에 내가 놀란다

건너편 감옥에서 수많은 눈들

저마다 새로운 상대를 살피고 있다

거리 모퉁이마다 낯선 말들의

집시들이 담배를 피우며 서성인다

오래된 건물 벽에는 난해한 낙서들

어지럽게 흩어져 어둠을 부른다

누구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같은 창문에도 다른 색의 꽃이 핀다

 

 

가슴꽃 - 홍성재

 

가슴 한쪽에

밭을 하나 만들고

거름을 뿌립니다

 

바람이 두드리는 풍경 소리에

부서지는 가슴 조각

모아 삭힌 거름입니다

 

눈물의 비가 내려 거름 스미고

바람에 실려 오는 당신의 향내음

하얀 눈으로 오는 그대 이야기가

부엽토로 덮였습니다

 

그곳에

그리움 깊이 뿌리 내린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