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소화 고은영의 오월시와 병솔꽃

김창집 2017. 5. 24. 07:01


오월 애()

 

, 그대 왔는가

불투명한 미래의 일기 속에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오월을 뒹굴 것인가

늙어지는 육신의 이면에 명쾌한 영혼으로

오월의 잎새처럼 마냥 푸를 것인가

창가엔 햇살이 환하다

나의 슬픔도 더러는 수수꽃다리 향 가득

엷은 노래로 희석되는가

찰랑대는 행복과 사랑의 이중주

초록으로 여울지는 음영들이 빛살에 살랑거린다

 

바람 부는가

오월 바람 일면 온통 푸른 향기들

견딜 수 없는 저 찬연한 푸르름

모로 누운 내 암울한 귓가에

숨죽여 달려드는 오월의 웃음소리  


 

 

오월아

 

오월아

외로 꼰 네 목이 오늘은 서늘하다

저 사르르 감겨오는 푸른빛

홑겹의 옷자락들이 팔랑대는

싱그러운 바람, 바람

그리고 거리의 인파와 인파,

오월 바람에 살랑거리는

사람들의 검은 옷,

 

지상에

오월 빛 실크로 꽃 단장하고

잊혀 진 숲으로 이제 우리 돌아가자

 

우리 임 가시릿고, 가시릿고

 

암울한 주검의 향기가 진동하는 어느 하늘

바람의 길목에 하루종일 풀피리 불고

가난한 눈물, 눈물들이 보도에 뒹굴 제

 

결 따라 휩쓸리는 우리 치맛자락에

오월의 풀빛으로 정화되어 가신

임의 촛불 하나

팔랑대는 바람의 장난에

세상을 배회하네

 

 

 

오월의 푸른 밤

 

밤의 노면은 비 그친 뒤 유독 번들거렸다

말간 얼굴로 투명하게 온 세상을 관통하듯

나의 에고를 통째로 거세당하는 거울 앞에 선 기분

 

단단하게 움츠렸던 내 안의 당신이

조용히 가슴을 열고 보도 위

빗물 고인 웅덩이에 파장을 일으키며

암전(暗轉)으로 와 부딪쳤다

 

오늘 밤은 저 먼 어느 숲에서

안개비 가득 사랑의 현을 뜯으며

온 밤을 방황하고 싶다고

소곤거리는 당신의 뒤태

 

당신이 한 세기를 앞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읽을 수 있다

늘 목마른 것들의 음영 속에도

휘청이는 유독 푸른 이 밤

거짓 없는 사랑이었다 되 뇔 진실들이

비 그친 느티나무 가지마다

그리움으로 걸려 하얗게 떨고 있다

     

 

 

이 푸른 오월에

 

멸시하지마라

허용되지 않은 생명이 없듯이

생을 애착하지 않는 생명은 본 일이 없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어떤 형편에서 건 생을 줄기차게 애착하는 일이다

 

이 푸른 오월에

새록새록 피어나는

초록의 부활로 가슴은 설레고

설렘의 가슴 따로 몸 따로......

울고 싶어라

 

살폿이 젖어오는 오월의 첫 페이지에

낯선이로부터 부쳐온

눈부신 편지 한장 소망하던 욕심도 가고

나이를 먹는 다는 게

늘 마음만 앞서는 일인 줄 나는 몰랐네

 

생각은 언제나 나보다 빨라 탄력이 넘치는데

몸은 시들어가는 꽃처럼

너무 쉽게 모든걸 포기해 버리는

그래서 빈 여백만 늘어가는 쓸쓸한 간이역

 

시간의 경계를 무덤덤이 지키는

욕망은 이제 꺼져가는 불꽃처럼 희미해질 뿐

환상이 사그라든 초라한 역전에

침전된 의식들이 풀려 나가고

기억의 문전에 빛바랜 사랑들이

먼지처럼 하나 둘 허공에 나풀거린다

     

 

오월이여 너도 가느냐

 

물빛 잎맥으로 피어나

연두색 그린을 대지마다 심고 웃자라더니

그대, 오월이여 너도 가느냐

 

푸름의 초장에

바람도 머물러 흐느적거리고

끝없이 펼쳐진 제주의 평원에

순백의 백로 노닐고

조랑말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바다, 갈매기, 이름 모를 풀꽃들

오름마다 초록이 쏟는 너울의 향기들

야생화 곱게 핀 오월의 마지막 동산에

정절을 부르는 무더운 여름이 물오르는 소리

 

바다의 표면마다 오후가 나 뒹굴고

눈부신 나신으로 하늘은

금빛 몸뚱이 바다에 멱을 감는데

푸른 물 든 바람꽃 지천에 뭉클뭉클 웃는다

 

행복하다는 것에 전율을 느낄 때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건

초록이요 희망의 설렘이다

청춘이 갔다고 인생이 고개를 숙인다더냐

 

다만, 성숙한 아픔으로 영혼의 진피마다

무력한 내 사랑도 커가느니

혈중에 농익은 내 사랑도 커가느니


                                    * '소화 고은영 Gallery & Poem'에서

    http://cafe.daum.net/kong1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