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지 제6호의 시들
♧ 노인성老人星 - 김상헌
离極靈星在 남극에 신령스런 별 하나 있으니
弧南號舊仍 호성 아래에 있는 별이라네.
曉望疑破月 새벽에 바라볼 땐 파월인 듯 보이고
昏見奪明燈 저녁에 바라보면 밝은 등불 감춘 듯
王道占亨運 조정에서는 국운의 형통함을 점치고
人家賀壽徵 백성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네.
衡山與漢峀 오로지 형산과 한라에서만 볼 수 있지만
此外見無會 다른 곳에서는 볼 수가 없다하는 걸.
♧ 메좁쌀 고구마밥 - 김광협
메좁쌀 고구마밥
한 함지박 퍼가지고 오너라
당신은 이리 와서 앉고
큰놈 둘째놈 셋째놈 막내놈은
저리들 가서 앉거라
막내딸 셋째딸 둘째딸 큰딸은
요리로들 와서 앉거라
우리들 사는 게 고달프고 고달프지만
고달프면 얼마나 고달프겠니
김치 있거든 이리 가지고 오너라
자리젓 있거든 이리 가지고 오너라
조팝 고구마밥 배추김치 자리젓
자리젓 배추김치 고구마밥 조팝
푹푹 떠서 먹으면서
이리도 살고 저리도 산다
저리도 살고 이리도 산다
살고 있으면 살 수 있을 테지
살고 있으면 살 수 있고 말고
하마 하마 걱정을 말아라
살고 있으면 살 수가 있단다.
♧ 마라도 - 강문신
차오른 생각에는 내 누이가 있습니다
산기슭 갯마을이거나 수평선 끝 닿은 데거나
누이는 빛바랜 바다로 그 어디나 있습니다.
우리 한 식구가 불빛으로 모여 살 땐
빈소라 껍질에도 만선 꿈은 실렸습니다
수평선 그 한 굽이에 마음뿐인 山과 바다
마라도 선착장은 받아 든 밥상입니다
허술한 초가지붕 덧니 물린 호박꽃도
그 여름 놓친 반딧불 별빛 따라 내립니다.
남녘 섬 하늘의 인연도 끝 간 자리
바다는 어디에도 가는 길만 열려 있고
서낭당 소망은 하나 둥근 사발 달 뜹니다.
물마루만 바라봐도 청보리밥 키 큰 누이
한 점 바닷새가 저녁놀을 몰고 와서
윤회의 섬 바위 끝에 하얀 집을 짓습니다.
♧ 애기뿔소똥구리․3 - 허은호
쇠똥 밑에도
집이 있다
휑한 집
풍뎅이, 무당벌레와 함께 살아도
통하지 못하는 길이 있다.
가난한 자들은 집을 나가고
서로 찾지 않는다.
겨울날 나누던 그 온기
봄볕으로 제비꽃이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동거문오름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였지.
한 세상을 떠받치면서
너의 가슴을 깊숙이 파들어 가는 것이다.
난 지금 아내의 자리에 서서
한 모금의 소문을 들이킨다
그러나
새벽녘 눈을 뜨는
어린 식솔들의 꿈이
나를 푸르게 한다.
* 서귀포시 제6호(서귀포시, 2017) ‘詩(시)로 보는 서귀포시’에서
* 사진 서귀포시 여러곳에서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