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고정국 시인의 가을 詩

김창집 2017. 10. 9. 08:35



시월에

 

시월엔 나무가 되랴

그 성그는 숲으로 가랴

 

물빛 하늘 우러러

낙엽을 준비하고

 

노을에 산창을 열고

저녁 불도

지피랴.

 


 

 

들국

 

혼자 들국을 보면

사람 냄새가

꽃에서 난다

 

露宿(노숙)에 길들여진

가출 소년 소녀들처럼

 

저들도

말 한 마디씩은

참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

 

시골길 아가씨들이

과소비에

한 술 더 뜬다

 

춥거니 섧거니 하며

온갖 내숭 다 떨더니만

 

일간지

일면에 피어

칼라

        칼라

        들

있다.

 


 

 

나팔꽃

 

반시계 방향을 돌면

네가 섬길

하늘이 있다

 

힘겨운 목덜미 너머

죄인조차

반기는

아침

 

뒤틀린

지상의 넋들이

따로

꽃을

준비하는.

 


 

 

호박꽃

 

딱 하나

그 꽃 앞에선

내 낯이 먼저

붉어진다

 

무심결

오줌을 누다

담장 너머

들킨 후부터

 

날 보면

없었던 일처럼

부러

부러

하품만

한다.



  

 

맨드라미

 

꽃이여,

네 혈관 속에

집시의 피가

흐르고

있지

 

낮술에 혀 꼬부라진

어릿광대

悖說(패설)이 있지

 

올가을

거리를 뜨는

늙은 酌婦(작부)

눈물이

있지.


 

 

晩秋

 

1

마침내 이 지상의 여론조사는 끝이 났다

아성의 박수소리 담장너머 뜸해지고

하나 둘 임시정부의 깃발들을 내리나니,

 

2

하냥 그 산기슭의 가건물은 허물어져

방방곡곡 내로라는 사기도박꾼도 다 뜬 지금

빛바랜 장풍껍데기만 식은 바닥에 어지럽고.

 

3

쓸쓸히 낮달이 혼자 젖은 내프킨 입에 물고

부러진 목제사다리를 간신, 간신히 내려와선

이제 막 내 지문에 묻은 도장밥을 닦으라 한다.

 

 

                        *고정국 시조선집 개망초 마을의 풍경’(토방, 199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