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수 시집 '섬과 섬 사이'의 '해녀'
♧ 숨비소리
칠성판 등에 지고
명정포 머리에 이고*
오락가락 저승길에
온 몸을 내던지는,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저 바다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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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요 ‘해녀노래’에서.
♧ 물질마당
한 많은 제주바당
훌훌 털고 나선 것이,
한반도 구석구석
안 간 데가 없다던데,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는
이름보다 더 멀구나!
♧ 난바르
육지물질 나갈 때는
난바르*도 겪었었네.
배에서 보름쯤을
물질하고 먹고 자고,
하루에 여남은 번이나
물에 들고 나고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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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일행이 배를 타고 나가서 여러 날 동안 배에서 먹고 자면서 치르는 물질.
♧ 바깥물질
한반도, 일본열도,
동북아로 뻗은 행로,
철쭉 길 떠나고선
추석 전에 돌아온다.
철새의 대 이동 같던
제주해녀 바깥물질….
♧ 불턱 2
남정네도 피해가는
바닷가 은밀한 곳,
옷을 벗어 갈아입는
해녀들의 왕국에서
쬐는 불 옆구리마다에
저며 오는 통증이어.
♧ 마라도해녀
마라도해녀들은
저마다 상군이다.
이 집 저 집 가려봤자
열댓 집 안팎이라.
빗창날 번득이는 곳에
뒤집히는 소라전복…
♧ 제주해녀
돌라진 섬 제주에는
해녀가 따로 없다.
집에 들면 현모양처
밭에 가면 농군인데
둘러맨 테왁망사리*에
작살 들면 제주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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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왁망사리 : 마른 박통과 그물로 만든 해산물 따 넣는 망태기.
♧ 할망바당 1
밭일 없는 마라도엔
할망바당* 따로 있다.
늙어서 힘 빠지면
상군도 기진하여,
오로지 먹고 살 길은
물질뿐인 좁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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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바당 : ‘할머니 바다’의 제주어.
*정인수 시집 『섬과 섬 사이(현대시조 100인선 52, 고요아침,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