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문충성 선생님 영전에

김창집 2018. 11. 5. 11:45


2011년 가을 어느 날,

선생님이 편찮으셨다기에 제대병원에 문안을 갔는데,

강원도 정선 아라리에 갔다가

아파서 왔다면서

그간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몸이 불편해 호텔에서 쉬는데,

일행은 모두 나가서 늦도록 안 오고

정신만 멀뚱멀뚱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죽을 번한 이야기를 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싶었다.


그 이후 발표했던 시들을

이제 와 살펴보니,

거의 세상을 정리하는 이야기 같아 보인다.

 

그간에 정을 주었던 사람들

혹여 짐으로 남을 사연들

모두 훌훌 털고

좋은 곳에서 편안히 잠드셨으면.

 

삼가 명복을 빕니다.

   

 

 

승천 연습

 

깜박 깜박

졸면서

 

하늘로 올라간다

올라간다 하늘로

 

오늘도 하르르르

허공 밟고

 

올라간다 미끄러지며

이 하늘 저 하늘로

 

찢어진 구름 타고

오늘도

 

엄마가 사는

하늘로

 

 

 

귀 하나만 - 문충성

 

나 죽어

다 썩어도

매미소리만 들리던 귀 하나만 있었으면 추적추적

가을날

대죽낭에 찬비 걸리는 소리

첫 싸락눈 오는 소리에

아아! 동박꽃 피어나는 소리

노랑 소리 꽃술에 취한 일벌들 콧노래 붕붕붕

동박새 날개깃에 이는 소소리 바람

드뷔시 음악 제쳐놓고 하얗게

출렁이는 저 바닷소리에 귀 모으리

늦은 봄날 햇살 쏟아지는 황금빛

사르르 복숭아 꽃잎 지는 소리

뙤약볕에 허리 휘어지는 배고픈 참새 소리도

짹짹 두어마디 들으리

귀 하나만 있었으면

   

 

 

앞으로 10년은

 

내 친구 성종이가 말하기를

우리 나이쯤 되면 먹을 것에 고민하지 말라고

고희 넘겼으면 본전은 된 것이니

덤으로 사는 삶에 너무 욕심 주지 말라고

먹고 싶을 때 먹을 것 먹고

병들어도 앞으로 10년은 넉넉하게 살 것이니

즐겨 마시던 커피도 안 마시고

그 맛있는 도새기 고기, 쇠고기도 안 먹고

한잔 하면 돌고 도는

물레방아 백수가 꿈꾸는

백수(白壽) 은은히 밝아오는 술도 끊고

그러면 세상사는 맛 다 잃어버리니

힘 있을 때 잘 먹고 즐겁게 살라고

한다 앞으로 10년은 넉넉하게 살 것이니

병들어도 10년은

   

 

 

고희(古稀)

 

문득

깨니

 

매미 울음 잴잴잴

깜짝 놀랐네

 

아프게

 

아무것도 안 보이고

캄캄하게

 

귓속에선 재열재열재열

매미 울음

 

두런두런 밖에선

싸락눈 내리는 소리

 

텅 비어가고 한 장

꿈속 세상은

   

 

 

허물어버린 집

 

허물어버린 집이 요즘

꿈속에 나타나 온다

할머니 어머니가 사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허물어버리면 안 될 집을 허물어버렸다

그 할머니 어머니 꿈속에 없어도

그 집이 꿈속에 나타나 온다

대추나무

감나무

당유자나무

산수국

매화나무

후피향나무

동백나무

채송화 몇 그루

저 멀리 혀 빼물고 헬레헬레

진돗개 진구가 나타나 온다

시간이 사라져 없는 풍경 속으로

오늘도 들어가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도

풍경이 된다 어느새

   

 

 

원담엔 가본 적 있니?

 

탑바리 차돌 밭에 밀고 써는 탑바리 바당

그 하얀 절 소리 들어 본 적 있니?

그 절은 소리만 빚어내는 게 아니다

깅이, 보말, 물꾸럭, , 보들레기

메역, 감태, , 점복, 굼벗

(이것들 종과 속으로 나눠 공부해 보겠니?

귀찮으면 그만두고)

키워냈다 썰물 때

원담엔 가 본 적 있니?

그 시원한 물이 바닷물 속에서

짜지도 않게 어디서 솟아나는지

마셔 본 적이 있니?

없다면 잔소리 말라 엉터리들

어렝이나, 맥진다리나, 자리나, 한치나, 우럭이나,

볼락이나 돌돔이나, 다금바리나, 매역치나, 북바리나

이름 따정 말해 보라

탑바리 바당에 들어 헤엄치는 여름날

우리는 즐거웠네

같이 헤엄쳤네 밀려오는 절에

때로 복 먹으멍 드러누웡 절 위에

절 타멍 하얀 갈매기들 날곡 하얗게

   

 

 

책 정리

 

다른 친구들은 다 정리했단다 벌써

전공서적은 도서관과 학과에

소설책과 시집들과 잡지책들은 폐지

수집가에게

읽을 책으로 3- 5백권 정도 남겨 두고

문득

궁금해진다

그 친구들 내가 서명까지 해서

증정한 내 시집들도

모두 버렸을까 그래

이제는 보내지 말아야지

그들이 읽을 책으로 놔둔 3- 5백 권이 어떤

책들인지 궁금해진다 자꾸만

자꾸

   

 

 

어머니를 만났을까

 

일당(日當) 형님 93세로 별세하셨다

20141215일 새벽

평생 어머니 일엽(一葉) 찾아

일본과 한국 방방곡곡

떠돌았느니 저승에서

마침내

어머니를 만났을까

   

 

 

꽃노래

 

처음 너는 자그마한 눈짓이었네 나풀나풀

이른 봄 햇살 풀리는 물 아지랑이

그 눈짓 네 눈 속에서 자라나

보랏빛 색깔 고르고 보랏빛 향기 고르고 무심무심

불어오는 바람에 한잎 두잎 슬픔의 그림자 지우곤 했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때로 너는 허무였네 그러나

존재의 어두운 계단 뚜벅뚜벅

걸어다니며 살아 있음의 고통

짖어대며 끊임없이

피멍 드는 혼 깊숙이

파고들어 나날이

온통 뿌리째 나를 뒤흔들어 놓았네

50년이 걸렸네 바보같이

그것이 그리움인 줄 아는 데

안팎으론 눈보라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