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무술년' 끝자락에 서서

김창집 2018. 12. 31. 13:14


20181231일 월요일.

올 한 해도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다사다난 했던 무술년

흐뭇한 평화의 분위기도 확인했고

여러 가지 이룬 것도 많았지만

자본주의의 맹점인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 분위기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무언가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능력이 없음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 볼 때입니다.

 

최기종 시집 슬픔아 놀자의 시로

무술년 한 해를 마감하려 합니다.

   

 

 

유아독존

 

이 세상에 외로운 내가 높아지지 저 세상도 높아지지

이 세상에 쓸쓸한 내가 깊어지지 저 세상도 깊어지지

이 세상에 구슬픈 내가 피어나지 저 세상도 피어나지

이 세상에 아파하던 내가 붉어지지 저 세상도 붉어지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가 일어서지 저 세상도 일어서지

   

 

 

우안거

 

간밤에 비 들고 바람 불어서

두려운 내 마음 없어졌지요.

고요한 밤이 좋이 흔들려서

곧은 심지 되잡을 수 있었지요.

 

아침 햇살 눈부셔서

서글픈 내 마음 숨어들었지요.

환해질수록 그림자만 짙어진다고

그 생기로움 때문에 음지에서 우울했지요.

 

오후 두 시에 꽃 지고 새 울어서

아픈 내 마음 편안해졌지요.

시들고 멍든 것을 동변상련 한다고

그것들 가여워서 새로이 반기에 들었지요.

황혼녘에 마파람 불어서

공한 마음이 잰걸음으로 달렸지요.

날이라도 좀 궂어야 쉬어가고

멀리 달아난 사내 따라잡을 수 있겠지요.

     

 

, 옛날이여

 

우리 어두운 방에서

환각처럼 내뱉는 말

, 옛날이여

파랗게 점멸하는 램프여

 

옛날처럼 그렇게

눈도 주고 귀도 주고

손도 잡았다면

이 세상 아프지도 않을 건데

 

옛날처럼 그렇게

입도 삐죽거리고 눈도 흘기면서

둘도 되고 셋도 되었다면

이 세상 서럽지도 않을 건데

 

그 옛날처럼

말도 트고 어깨도 기대면서

다리도 놓아주었다면

이 세상 어둡지도 않을 건데

 

허한 세상 헛헛한 가슴

깊고 깊은 나락에서

한숨처럼 내뱉는 말

, 옛날이여

파랗게 점멸하는 노래여

   

 

 

요법

 

아플 때는 아프다고 하자

아플 때는 참지 말고 여기가 아프다고 하자

너에게 나에게 여기가 아프다고 하자

아프다고 그렇게 해야 그렇게 눈물지어야

아픔이란 아픔 가셔서

거기가 가뿐해지는 것 아니냐

아픈 만큼 단단해지는 것 아니냐

슬플 때는 슬프다고 하자

슬플 때는 숨지 말고 여기가 슬프다고 하자

너에게 나에게 여기가 슬프다고 하자

슬프다고 그렇게 해야 그렇게 손을 내밀어야

슬픔이란 슬픔 날아가서

참꽃 피어나는 것 아니냐

슬픈 만큼 깊어지는 것 아니냐

 

아플 때는 아프다고 하고

슬플 때는 슬프다고 하자

아플 때는 참지 말고 여기가 아프다고 하자

슬플 때는 숨지 말고 여기가 슬프다고 하자

그렇게 비워 내어야 그렇게 채워 내어야

아픔도 슬픔도 네가 되고 내가 되어서

새살 돋아나는 것 아니냐

저 달처럼 둥글어지는 것 아니냐

   

 

 

우주의 소리

 

~이라고

단전에 힘을 모아

입술을 오므렸다 닫으면서

~, ~하면

오장육부 가열차지

옴~, 옴~, 옴~하면

 

~~이라고

머리를 가다듬어 길게

나를 부르는 소리

~~, ~~하면

오욕칠정 말끔히 끊어지지

~~, 옴~~, 옴~~하면

 

~~~이라고

삼라만상 부르는 소리

우주의 소리

~~~, ~~~하면

세상의 만상들 훌훌 털고 새로 태어나지

~~~, 옴~~~, 옴~~~하면

 

~하면

일만 팔천 리도 금방 가지

옴~, 옴~하면

남남북녀도 오대양육대주도 품에 들고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문득 사라지지

옴~, 옴~, 옴~하면

 

                        * 최기종 시집슬픔아 놀자(도서출판 b, 2018.)에서

                                           * 사진 : 다려도의 일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