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無等山) 예찬
♧ 아, 무등산 - 김영천
무슨 꿈이 그리 빛나는가
휘휘 둘러보니
혼자 솟아 일등하면 무엇하냐고
멧방석만하게 오지랖 펴놓고
도리도리 앉았구나
더러는 恨이나 비애를 말하지만
우린 서로의 가슴을 향해
천방지방 길을 내며
더불어 흐르며
그 조촐한 마음들이
지금은 우루루 억새 되어 피었느니
두런두런 거리며
함께 흔들리며
너와 내가 또 어느새 하나가 되었느니
평등보다 더 낮은 무등의 바람으로
아아, 싱그러워라
비워 둔 그대 가슴엔 또 무엇을 기르시는가
늦은 것들은 골마다 발을 담그고
더러 어둠을 씻는다
♧ 무등산 - 제산 김대식
무등산을 아느냐
무등산이 왜 무등 이더냐.
산은 높되 민둥산이구나.
그래서 무등 이더냐.
산이 돌아누워 엎드려 있는데
바위들이 일어서서 무등타고 있구나.
그래서 무등인가
광주를 아느냐
시민들 일제히 일어나
민주를 외치던 그 함성을 듣지 않았느냐.
독재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는 시민의 항쟁을
민주의 빛이여, 빛의 고을 광주여
무등산을 보라
서석대, 입석대를 보라
바위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외치질 않느냐
불의에 굴하질 않고 독재에 항거하질 않더냐.
누가, 둥글둥글 돌처럼 살라 했더냐.
누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했느냐
불의를 보고도 둥글게만 살아야겠느냐
불의와 타협하며 살라 했더냐.
나도 여기 무등산에 올라왔노라
나 여기 아름다운 규봉을 밟았노라
여기서 바위에 걸터앉아 무등을 타노라.
나 여기 왔다 발자국 하나 남기고 가노라
바위도 일어나 민주를 외치던 이곳에
나도 한목소리 외치고 가노라.
세상의 모든 것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나니
우리가 피 흘려 얻은 민주주의여
이 땅에서 꺼지지 않는 횃불로 타오르기를
민주주의여 영원하여라.
♧ 무등산은 가까이 있다 - 김현옥
무돌 무진악
더할 나위 없는 무등의 표본
서석대, 입석대, 규봉암, 새인봉, 덕산 너덜
곳곳에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목마름을 적셔주는 샘이 많은 토산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나 들녘에 솟은 달덩이
무등산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가진 산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을 배우고 닮아
등급이나 차별이 없고 분명하다
무등의 음역으로 푸르게 푸르게 산다
무등산은 살아 있다
시가 살아 있다
오를 때마다 새록새록 새롭다
바라보면 부담스럽지 않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참 편안하다
인정 많고 넉넉하고 사귐성이 좋다
정다운 사람들은 가까이 있다
정든 고향 산천은 가까이 있다
빛고을 광주의 심장
무등산은 가까이 있다.
♧ 무등산 산행 그리고 비 - 김영천
평등보다 더 낮다는
무등의 허리께로
빼아시 푸러렁
빼아시 푸러렁
우중에 희롱하는 새소리인가
규봉암 해우소
正因 스님 도닦는 소리인가
유심하여 돌아보니
남겨 둔 세상조차 보오얗게
이마 벗으며 다가서네
남강 빛 산수국도 우루루 피어나고
까치수염
하늘말나리
다투어 맞는데
젖은 내 구두 속에서
오호라, 퉁퉁 분 그리움이
훌쩍 가벼워져서는
한 자락 운무로 피어나려는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상을
간섭하며
빼아시 푸러렁
빼아시 푸러렁
♧ 입석대 추상 - 李順姬
드디어 1017미터
입석대
영혼을 곧추세우는
깎아 내린 고도의 섬광
핏줄들 내 곁을
썰물처럼 다 빠져나간 뒤
형언할 수 없는 적막 같은
누구에게도 발설하기 싫은
수직선상에 새겨진
숭고한 애달픔
어떤 상황에서든
여기선
섣불리 따지지 말자
저 바위를 접고 스치는 바람처럼
얽매이진 않으리
그러나 나는
그들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입석대와 나
시상(詩想)과 나
복수가 되듯
♧ 입석대(立石臺) - 정진기
바위야!
긴 세월 앉아 있기도
힘이 드는데
왜 서 있니?
소나무야!
고운 땅에 뿌리를 내려도
살기가 힘이 드는데
왜 바위 위에 있니?
친구야!
평지를 걷기도
힘이 드는데
왜 눈길을 헤치며 왔니?
어렵게
힘들게 살다보면
낙심할 때 많지만
그대 이름 부르며
오늘을 산다
♧ 아! 무등산아 - 김정호(美石)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날
꼬막재를 지나 안개 바람 불고
산허리 휘감아 도는 산길은
안개 그치자 하늘로 가는 길이 된다
천년을 살아온 노송 이파리
오랜 세월 아물지 않은 상처들 기억하는지
길가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80년 5월 소리 없이 쓰러져간 영혼들
그대들은 이 땅의 열사이고
이 땅에 어두운 밤을 밝히는 횃불이었다
칼로 잘라낸 듯한 입석대 바위들아
그 힘찬 함성을 어찌 잊으랴
천 년 만 년 그 모습으로 굽어 보아라
철조망에 가로막혀 정상 향하는 길이여
이 찢겨진 역사를 마감할 날
무거운 옷을 벗어버릴 날은 언제 오려나
버들가지처럼 부드럽고
햇살처럼 따듯한 무등산아
5월이 가기 전 맑은 계곡 물에
얼음 조각처럼 시러운 아픔 흘러보내자
♧ 장불재의 하늘 - 이계윤
저리도 짓 푸른 하늘 아래
영그는 가을을 만지는 사람들
맑은 물고여 있을 것 같은
하늘로 솟구쳐 오르려다
은빛 억새꽃 속에서
근심 걱정을
마구 털어 내고 있다
석양을 빨갛게
태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