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강방영 시인의 '봄 서정'

김창집 2019. 2. 27. 16:08



유채꽃 봄날에

 

멀리 바다는 봄빛 속에서

푸른 물을 하늘에 대어놓으니

하늘은 내려와 잠겼다

 

오름 위로 불어가는 바람은

흰구름을 감아서 말았다가 폈다가

지상의 무리진 꽃대들을 마구 흔들어대는데

 

노란 꽃무리 속에서 벌들은

꿀에 취하고 꽃가루에 몸이 무거워

바람의 재촉에도 느릿느릿 겨우 움직인다

 

여름과 가을 낙엽이 예약되었다 해도

아직은 꽃에 얼굴을 묻고 시간을 잊어야지

바람이야 몸을 밀든지 말든지

 

봄꽃들이 지는 것을 서러워할까 보냐

단단한 씨앗의 길을 내고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흙 속 뿌리로 스민다고 해서

 

꽃들의 합창은 멀리 하늘로 오르고

애틋하게 황홀한 오늘 하루는

꽃빛 속에 한 올 한 올 세월로 스민다

   

 

 

꽃밭의 합창

 

큰 구름 움직여가는 푸른 하늘

그 꼬리를 따라가는 아기 구름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

노래로 술렁이는 봄날

 

우리 노래 꽃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

봄 하늘에 퍼지는 합창

   

 

 

비 맞는 풍경

 

비 맞으며 서 있는 나무

목련 흰 꽃송이들

 

건널목에 가느다란 몸 흰 얼굴

하늘 멀리 바라보는 여인

 

말 못할 그리움에

눈물 머금은 듯

 

꽃잎도 젖어

사람도 젖어

 

서로 잠깐 나누는 시선

떨어지는 빗물

   

 

 

목련꽃 불상

 

나무들과 함께 앉아있는 청동 불상

세월은 검버섯으로

그 몸을 덮고 있지만,

얼굴에 미소는

아직도 따스하고,

새로 피어 하늘로 잎을 연

흰 목련꽃들

불상 머리 꽃잎 모자와 함께

봄 하늘을 담았네.

 

하늘과 땅을 이으며 앉아있는 몸,

등과 가슴과

다리와 팔과 손가락 끝으로

유려한 선으로 흐르는 생명,

감은 듯 열린 눈

깊은 곳을 드려다 보시며,

귀 기울인 고요함으로

무슨 말씀을 전하시는가,

 

, 영원으로 흐르는

이 봄날에.

   

 

 

사십구재四十九齋

 

꽃 피고 열매 맺는 생명의 나무 아래

가족들 남겨두고 돌아서는 노인

 

구름길 밟기 전 뒤돌아보며 손 흔드는

그 얼굴에 잠시 복사꽃 같은 웃음

 

가볍고 즐겁게 아이처럼 기쁨에 넘쳐

이제 아주 돌아서서 가는 노인

 

그 동안의 병고와 잔걱정 큰 근심 벗어두고

모든 일 다 내려놓아 복사꽃 웃음만 가득,

 

안녕이라고, 영영 안녕이라고 빠른 걸음으로

열린 구름길로 들어가 홀연히 사라지는 노인

   

 

꽃 피는 서귀포


일으켜 주세요 나를

한 번 더

햇살 속에 서서

달디단 새봄의 바람을

맛보고 싶어요


갑갑해요

어서 겨울의 어두웠던 무덤 밖으로

나를 끌어내 주세요


먼 산허리에 얹혔던 눈

흙 속으로 녹아들고

사방에서 흐르는

봄의 물소리

또렷이 들려와요


가을 지나 겨울 동안

내 안에 자라났던

긴 공동의 시간

골짜기에는 나의 백기처럼 걸려

나부끼던 억새들

이제 거두어 주세요


긴 기다림은

환희의 함성이 되고

메마른 죽음 속에

새 생명이 탄생하였으니

다시 초록 속에 타오르는

삶의 축제여


바다는 옥빛으로 변하고

부서지며 하늘 향해 오르는

즐거운 파도를


범섬도 늙은 등뼈를 펴

햇살을 쬐고요

해녀들의 긴 날숨소리

열 길 물 속을 열어

벅찬 마음으로 출렁거려요

일으켜 주세요


한 번 다시

살아보고 싶어요

한 번 더 춤추고 싶어요  

 

       * 강방영 시집그 아침 숲에 지나갔던 그 무엇(시문학시선 576, 2018) 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