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제주 고인돌' 외 2편 - 김진숙

김창집 2019. 7. 24. 18:44


제주 고인돌 - 김진숙

     -용담2581

 

제주에선 고인돌을 석선이라 부르지요

귀퉁이 닳고 닳아 표정조차 읽을 수 없는

옛사람 오래된 잠을 판독하는 바람의 날

 

섬에서 나고 자라 바람 타는 법을 알지요

저어라 노 저어라 유배지의 파랑주의보

팽나무 그늘에 들면 거친 숨소리가 들려요

 

이백여 년 출륙금지령도 끝끝내 막지 못한

자유를 향한 항해의 꿈 잠결이듯 튕겨보는

난바다 검은 팔뚝에 일어서는 파도 소리

    

  

목이버섯

 

나무는 귀가 되었다

동굴 속 산짐승처럼

 

울음 그칠 때까지

절망을 후벼 파던

 

어둠이 머물던 자리

열꽃이 돋아났다

 

사랑이 아팠던 밤

고흐는 귀를 잘랐다

 

물감을 쏟아내자

무수히 몸부림치던

 

내 몸속 모든 별들도

어둠을 빠져나왔다

    

 

 

경의선

 

  녹이 슨 새들이 열차를 끌고 간다

 

  장단콩 콕콕 쪼다 임진 장단 봉동 개성 콩 한 쪽 입에 물고 열차를 끌고 간다 토성 여현 금교 한포 삐걱삐걱 날아올라 철조망에 둥지 틀고 알을 낳던 새들아 평산 서흥 흥수 마동 어서어서 가자구나 사리원 계동 황해 황주 역포 너머 대동강 시린 물에 목축이다 가잔다 평양 서포 석암 만성 녹물 털어 한숨 돌리고 화통 속에 뿌린 뽕나무도 데불고 신안주 맹중리 운정 정주 끊긴 길에 침목 하나 얹고 또 얹고 선천 남시, 들릴까 육십여 년 그 겨울 경적소리, 이번 역은 신의주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어디쯤 가고 있나요

  당신이 탄 열차는


       * 김진숙 시집 눈물이 참 싱겁다(문학의전당 시인선 0307, 20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