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정신의 그믐 - 김순이
김창집
2019. 8. 5. 12:05
♧ 정신의 그믐 - 김순이
화려한 것의 이면에는
깊은 슬픔이 있다
향기로운 꽃송이 아래쪽에는
어둠을 뚫고 가는 잔뿌리의 아픔이 있다
즐겁게 노래하는 새의
뼛속은 텅 비어 있다
드러나지 않은 생의 이면이 우리를 만들어 간다
갈림길에서 나는 기꺼이 비포장도로를 택하였다
부르튼 발을 앓는 밤마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건너가는 불면不眠
두려운 것은 궁핍이 아니라
기름진 삶이 가져오는 정신의 그믐이었다
높이 날기 위하여 창자를 비우는 새
겨울을 건너가기 위하여
알몸이 되는 나무
그들에게서 나는 배운다
무거운 이 세상 건너는 법을
-김순이 시선집 『제주야행濟州夜行』(황금알 시인선 195. 20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