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문학' 제10호의 시들(1)
♧ 수국 – 김옥순
인생여정처럼
대처의 한 수
나툼*으로 다양하게 그려간다.
카멜레온처럼
화려한 가화의 분장은
예쁘게 더 예쁘게
숲의 요정으로 산다.
삶의 경쟁은 숲에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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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툼 : 명백히 모습이 드러나거나 드러냄.
♧ 번데기 663 – 김종호
주름 한 겹 한 겹
채워놓고 있습니다.
죽을 듯이 슬펐고
죽을 듯이 기뻤던 사랑
낱낱이 헤쳐서
포근한 햇살에 뒤채며
밖으로 내달리던 나를
안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겹 한 겹
기름칠하며 있습니다.
어느 순간을 위하여
날개 한 쌍 직조하고 있습니다.
♧ 별 – 김태호
누군가 그립고 아쉬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날이면
함석지붕 위에 올라앉아
밤하늘 별들의 합창을 듣는다.
하나, 둘 별을 새노라면 눈이 부시다.
이제 더는 볼 수 없지만
저 별이 내 눈동자에 쏟아져
산을 이루고 강물이 되는 까닭에
누구의 이름이 그립고 가슴에 사무칠 때
낡은 지붕 위에 오르는 꿈을 꾼다.
♧ 추억 - 문경훈
참외 노란 꽃 피는 봄날
하얀 고무신 신고
장에 가시던 어머니
잊지 말고 돼지 먹이 주라고
바람 불면 고내봉 소나무
솔잎 냄새 싱그러워
과자 사고 오실 어머니
손꼽아 기다렸지
그 세월 흐르고 흘러
어머니 돌아가시고
오두막집도 헐리고
연립주택이 들어섰지
고내봉 기슭에 운무가 덮이면
참외밭엔 옛날 노란 꽃이 피고
어머니 모습은 마음에 계시는데
꿈길에선 초저녁별만 반짝거린다.
♧ 군자란이 옷고름 풀 때 - 양상민
파아란 달빛이
베란다에 교교히 내려와
군자란 화분을 살포시 품는다.
금실푼사 한 고비
영글어 부푸는 저 몸짓을
어이 눈치 챘을까
이제
둘이서만 속삭이는 밀어
온몸에 도도히 젖어드는
연분홍 가슴 몽실 봉오리
쉿, 저들 약속은
밤하늘 밀사의 비밀
꽃잎 옷고름
한 올 한 올 열어
은밀한 신음 향기 토할 때
파르르 두 몸 하나 되는 정점
이 한밤
고요마저 애가 탄다.
♧ 파리 잡기 - 임애월
짝∼
파리채의 단말마
한 목숨을 결정짓는
神의 판결
흔적 없이 사라지는
또 하나의 연대기
장마는 여전히 지루하고
죄의식은 없었다
♧ 환절기 - 김영란
시간의 문턱을
해직자들 건너가고
삶은 늘 그렇게
어깃장 놓으며 오듯
가을과
겨울 그 사이
홀로 지는
저
감국
*『애월문학』2019년 제10호에서
* 사진 : 표선 제주민속촌(9.2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