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최기종 시 '아버지의 등'과 무등산

김창집 2020. 2. 24. 10:39

 

 

♧ 아버지의 등 - 최기종

 

아버지 등 밀어주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등도 비바람 피하지 못하는가

등도 나이 타는 얼굴처럼

검버섯 돋아나고 낡고 해지고 주름지고

어릴 적 아버지의 너른 등

따개비처럼 한참을 밀었어도

당당 멀었었다.

이제는 손이 커져서

여름소나기 지나가듯이 밀어대니

등도 부끄럼 타는 것일까

아버지의 굽은 등

결기도 핏기도 자존도 없어지고

등도 밀어대면 이렇게 해지는 것일까

황사에 패이고 깎여서

종잘대던 시내도 말라 버렸으니

비바람 찬 서리 내리다 보면

등도 갑골문자가 되는 것일까

 

 

♧ 숙면

 

병실에서 아버지

이 아들 잘 자라고

이 한밤 부채질이시다

산소호흡기 귀에 걸고 곧추 앉아서

간이의자에 잠든 아들 들여다보면서

뜬눈으로 번을 서시는지

 

밤이 이슥하니까

이만 자자는 아들보고는

아직은 아니라고 너나 자라고

이 아들 곤히 눕히고는

짜잘한 얼굴 새기고 새기면서

이 한밤 건너가시는지

 

이러면 기력이 쇠한다고

내일을 위하여 그만 자자고

잠꼬대처럼 칭얼대는 아들보고는

아직은 아니라고 잠이 보약이니

이 아들 잘 자라고 다독거리면서

잔기침으로 이 한밤 밝히시는지

 

이 병 깊어지면

눕지도 자지도 못한다던데

이 아들은 몰랐다

아직은 누울 때가 아니라고

손사래치던 당신만 믿고

이 아들 단잠에 빠져들었으니

 

 

♧ 재

 

짚가리 헐어 삼시를 때도

재소쿠리 하나 내지 못합니다.

 

싸리나무 열 단 스무 단 이레를 때도

한 뙤기 채매밭을 덮지 못합니다.

 

그렇게 무성하던 시절도 허무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열불 나던 성질머리도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런데 몰랐습니다.

재라는 것이 끝내 타지 못한 뼈저림이란 것을

삼우재를 지내고

불당그래로 아궁이 긁어대면서 알았습니다.

 

 

                              *동인시집 8호『포엠만경』(포엠만경, 2019)에서

                              *사진 : 2019년 1월 16일 무등산에서 찍음

 

 

--코로나19로 뒤숭숭한 아침

  최기종 선생님의 시를 펼쳐봅니다.

  잔잔히 흐르는 부정(父情)에서

  ‘아버지’, ‘늙음’, ‘죽음’ 같은 낱말을 떠올려 봅니다.

 

  나의 아버님은 57세 때 지병(持病)도 없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45년 세월이 흐르고, 내 나이 그보다 15년이나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리움 속에 절절하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