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박종국의 '산림문학' 초대시 중에서

김창집 2020. 3. 21. 12:20

 

♧ 봄이 오기까지

 

튼실한 씨앗의 문을 열고

씨앗 속 씨방으로 들어가 보낟

겨우내 씨방 속에서는 내림굿이 벌어진다

칼날 같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위에서

강신을 한 씨는

신의 힘을 내림받는다

움켜쥔 주먹 부들부들 떨다

벽을 허물고 땅을 찢고 나와

외마디,

파란 비명을 지른다

 

 

♧ 봄날

 

능선을 따라 일렁이는 열기, 푸르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온기로 가득 채우는 바람이 산들거릴 때마다 아른거리는

정감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는 날이다.

 

산자락의 초록빛 햇살 속에서 돌 축대 사이에서 잎잎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반짝거리는 햇빛 속에서 온몸을 산산이

부수고 있는 아지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뜨거운 입김

같은 것이 아롱거리고 있다.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저것은 누군가의 사랑의 입김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입맞춤 같은 열기를 받은 봄날이 온몸으로 새싹을 밀어올리고

있는 날이다.

 

 

♧ 봄입니다

 

가슴 넘치는 가락, 음률 하나하나는

죽고 살기로 연주하는 색깔들의 장중한 심포니

이 세상 모두가 사라진다 해도 그칠 수 없다는 듯

몸짓합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심금,

떨리는 파동입니다, 지상에서 천국으로 천국에서

지상으로 오르내리는 굽이침입니다

절정으로 치닫는 당신과 내가 만나는 소리

거추장스러운 옷가지 벗어던지는 소리

당신이 부는 풀피리 앞에 무릎 꿇는, 내 가슴 들판엔

아지랑이 아롱거리고 벌 나비 꽃을 찾아듭니다.

풀밭에 앉아 알몸으로 오시는 당신 마중하는 봄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봄입니다, 당신의 색깔

 

혼자 감당하기에는 가슴 벅찬 봄입니다.

 

 

♧ 그 봄이 다 지나도록

 

눈 깜짝할 사이, 냇가 찔레꽃 하얗게 피었습니다

햇빛 한 자락 칭칭 감고 빨랫방망이 소리 물길 삼아

퉁퉁 불었을 젖꼭지 찾아가던, 내 유년같이 맑은

냇물 안쪽에 피었습니다, 어머니 향기가 물씬 납니다

깜빡 졸았나 봅니다, 향기에 취한 오십 년 세월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그 봄이 다 지나도록 나는 찔레꽃이 왜, 붉은 열매를

맺는지, 찔레순 꺾어 입에 물려주고는 환한 봄날이던,

어머니의 깊은 향기를 몰랐습니다, 젖꼭지 물려놓고

무너져 내리는 황토같이 웃는, 찔레꽃 하얀 웃음

이제, 내가 웃는 냇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찔레꽃 따서 씹어보는 등줄기가 서늘합니다

 

                              *『산림문학』2020년 봄(통권 37호) ‘초대시 – 박종국 시 10편’에서

                                               *사진 :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

 

 

--춘분이 지나고 포근한 주말입니다.

  어제는 괴오름과 동물오름에 다녀왔는데,

  오가는 길 가로수나 공원의 벚나무나

  오름 주변 자연산 산벚나무 중

  이른 올벚나무 종자가 활짝 피었고,

  어떤 나무는 일부만 피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고

  집안에서 보내는 분들께

  벚꽃 소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