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문학' 2020년 봄호의 시


♧ 이른 봄 꽃 마중 – 강영순
난리亂離 난 줄도 모르고
산나물로 연명하던
깊은 골짜기
이른 봄 차가운 바람에도
꽃들은 다투어 핀다네
봄눈 다 녹기를 끝내 못 참고
설레는 맘으로
그 골짜기 들어서니
잠이 덜 깬 맑은 개울물
고드름 매단 바위 아래로 재잘대며 흐르고
개울가 이제 막 옷자락 펼치는 처녀치마
양지 쪽 노오란 꽃다지
또렷한 눈망울 봄까치꽃
모두 옛날 소꿉동무 반갑게 눈 맞추네
흰 눈 아래 가만이
낙엽을 들추니
아, 너도바람꽃!
수줍게 고개 숙인 어린 꽃대
그래 너를 보러왔는데
재회再會의 눈시울 뜨겁네
행여 탈날까
갓난아기 강보襁褓에 싸듯
조심조심 숨죽이며
낙엽으로 정성껏 감싸 주었네
눈 덮인 바람 찬 골짜기
저 갓난아기를 두고
차마 못 떠나는 마음
서쪽 기운 해 웃고 있네

♧ 봄이 님의 얼굴이었습니다 - 김영자
하늘 속에 흰 배꽃이 가득 찬
불암산佛巖山 아래 사는 수도 사제는
오늘 아침 막달라 마리아처럼
울고 싶은 아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낮엔 봄을 님이라 불렀습니다.
흰 옷자락 만지던 날은
내 꿈속이었지만
오늘은 배꽃을 받으며 님을 만났습니다.
꽃목걸이 걸어주시던 따뜻한 손
봄처럼 안아주시던 님
봄이 되어 오신 나의 님
봄이 님이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봄이 님의 얼굴이었습니다.

♧ 산빛 읽기 – 지은경
산은 시詩의 정원
맛있는 언어를 채집하러 간다
잠든 일상의 노래 깨워
산새들과 합창하러 간다
노랑 생강나무 꽃에
먼지 묻은 눈을 씻어야겠다
개울물에 피 묻은 날개
씻어주어야겠다
허영의 거리에서 헤매던
내 허물,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
깊고 깊은 겸손의 골짜기에서
좋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들
눈썹 위에 얹으리라
노을을 각혈하는 하늘
함축된 숲의 언어를 채집하여
내 가슴 속살에 낙인찍고 온다
* 시 :『산림문학』2020년 봄호(통권37호)에서
* 사진 : 어제 서귀포시 수망리 소재 민오름에서

--어제 일요일(3.22)은 수망리에 자리한 민오름에 올랐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시계(視界)는 확 트이지 않았으나
그런대로 가까이 있는 것들은 청량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고사리는 이제야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있고
참식나무와 새덕이는 꽃처럼 새순을 내미는데
숲속에선 진달래꽃 무더기를 만났습니다.
들판의 동백꽃은 아직 지지 않았고,
숲속 호자나무 열매도 빨간 빛을 잃지 않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준비된 녀석들은 벌써 봄의 중심에 서 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녀석들은 이제야 잠을 깨어
봄 채비를 서둘고 있더라구요.
우리 국토 방방곡곡에 있는 여러분들도
어서 빨리 코로나19의 답답한 겨울을 보내고
모두 즐거운 봄맞이를 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