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 시 '두루미천남성'과 함께
5월 마지막 날
‘비가 온다’는 예보와 함께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져
숲이 있는 높은 오름에는 못 가고
곶자왈 길을 걷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산행은
우리에게 오름 길을 열어준
‘오름나그네’ 김종철 선생 추모를 겸해
시행하는 행사였다.
사실 처음에는 오름 모임을 처음 결성했던
우리만의 ‘오름의 성지’로 정한
‘나그네궤’에서 행해졌지만
지금은 그곳이 산행금지 구역이어서
여러 오름을 돌아다니며
조그만 정성으로 이어 왔다.
11시경 조촐한 행사를 갖고
길을 걷는데
마침 나그네 선생의 모습을 닮은
이 두루미천남성 가족(7개체)을 만났다.
지난 번 사려니숲길에서는
무늬천남성 여러 개체를 만났더니
이번에 뜻밖에 만난 꽃을
우러르며 찍어 보았다.
♧ 두루미천남성 - 김승기
그렇게도 하늘을 날고 싶은 걸까
길게 뻗은 다리
넓은 이파리로
하늘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활짝
날개를 펼치고
오뉴월 땡볕 아래
땀 뻘뻘 흘리고 있네
외다리로 버티고 선 땅
그렇게라도 몸부림을 치고 나면,
오르지 못하는 꿈으로
애타는 가슴
조금이나마 시원해질까
그런다고 남쪽 하늘의 별이 될까
지상에 묶인 몸
마음만 하늘에 올려놓으면 되는 거지
학이 되어 날아오르겠다고
요란 떨지 않아도
정해진 때가 오면
절로 익어 터지는 빠알간 옥수수 열매
알알이 별이 되어
지상을 화안히 밝히게 될 것을
지금
하늘을 향해
무슨 짓거리 농弄을 하고 있는 건지
떠돌지 않고
한 곳에 뿌리 내린 것만도
크나큰 복인 것을
* 김승기 한국의 야생화 시집(2) 『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해마루북스, 2008)에서
* 사진 : 2020. 5. 31. 곶자왈 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