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문순자 '웃음바다 울음바다'

김창집 2020. 6. 4. 10:13

어제는 기자 한 분을 대동하고

남원읍 한남리 머체왓 숲길의 한 가닥이라 할 수 있는

서중천 탐방로취재를 다녀왔다.

 

한창 물이 오른 나뭇잎들의 향연에

덩달아 신이 나 냇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날씨가 잘 받쳐주진 않았지만

세상일이 내 마음 먹은 대로 가는 건 아니어서

그러려니 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즐기면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숲이어서 찔레꽃은 볼 수 없었고

산딸나무와 마삭줄 꽃에게서 대접을 많이 받았다고나 할까.

 

6월의 숨결은 이제 부정할 수 없었고

돌아오다 본

한우들의 표정에서 요즘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별도봉 자살터에 도체비불 펠~

 

다시 한 번 생각하라등대불이 펠~

 

한 모금 내뿜는 사이

 

펠롱 펠롱

 

 

꽃과 바다

 

내 아버지 기일은 꽃샘추위 끝물이다

넘실넘실 구엄 바다 목련꽃 피워대는

그 바다 저어 온 달을

매어놓은 친정집

 

40년쯤 지나면 제삿날도 잔칫날 같다

핑곗김에 4대가 왁자지껄 모여들면

세상사 똥 복헌 일’*에도

웃음꽃 울음바다

 

이승을 떴다 해도 아니면 또 왔다 해도

멧밥 갱 돗궤기적갈 빙떡 다 필요 없다

또 한잔 음복주 생각

간절하실 사람아

 

--

* ‘방귀 뀌듯 아주 사소한 일이란 뜻의 제주 속어.

 

호구虎口

 

날 새면 한의원 갈까

병원에 그냥 갈까

 

오냐오냐 받아주니 성한데 하나 없다

 

바둑판

아다리치듯

날 떠미는 세상아

 

다시, 쓰다

 

봄이면 버릇처럼 전정가윌 만진다

감귤나무 생목숨 다비한지 10년 만에

아들놈 첫 월급 털어

감귤나무 또 심는다

 

생각 없이 받아든 몇 푼의 폐원보상비

참깨 기장 양배추 별별 농사 다 해봤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도로아미타불 같은

 

일수 찍듯 서둘러 밭으로 나서는 길

죽어라 김을 매도 돌아서면 무성해지는

이 땅에

몸으로 쓰는,

몸으로 쓰는 영농일기

 

몸으로, 갑년

 

기막혀라!

내 몸이 이미 갑년을 아는 걸까

이 병원 또 저 병원 쇼핑하듯 드나들면

여섯 살 손녀딸 비누에 슬그머니 손이 간다

 

삶의 어느 길목인들 가려움이 없었으랴

늦가을 늦바람처럼

느닷없는 성인아토피

휘파람 그 인연 하나 매복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세상은 숟가락을 세다 가는 일

성성하던 억새도 바람에 몸 맡기듯

육순의 헛헛한 몸뚱이

세월에나 맡긴다

 

 

                       * 문순자 시집 어쩌다 맑음(황금알 시인선 209, 2020)에서

                         * 사진 : 어제 서중천 탐방로에서 본 꽃들(2020.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