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자 '웃음바다 울음바다'
어제는 기자 한 분을 대동하고
남원읍 한남리 머체왓 숲길의 한 가닥이라 할 수 있는
‘서중천 탐방로’ 취재를 다녀왔다.
한창 물이 오른 나뭇잎들의 향연에
덩달아 신이 나 냇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날씨가 잘 받쳐주진 않았지만
세상일이 내 마음 먹은 대로 가는 건 아니어서
그러려니 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즐기면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숲이어서 찔레꽃은 볼 수 없었고
산딸나무와 마삭줄 꽃에게서 대접을 많이 받았다고나 할까.
6월의 숨결은 이제 부정할 수 없었고
돌아오다 본
한우들의 표정에서 요즘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버지
별도봉 자살터에 도체비불 펠~롱
‘다시 한 번 생각하라’ 등대불이 펠~롱
한 모금 내뿜는 사이
펠롱 펠롱
펠~롱
♧ 꽃과 바다
내 아버지 기일은 꽃샘추위 끝물이다
넘실넘실 구엄 바다 목련꽃 피워대는
그 바다 저어 온 달을
매어놓은 친정집
40년쯤 지나면 제삿날도 잔칫날 같다
핑곗김에 4대가 왁자지껄 모여들면
세상사 ‘똥 복헌 일’*에도
웃음꽃 울음바다
이승을 떴다 해도 아니면 또 왔다 해도
멧밥 갱 돗궤기적갈 빙떡 다 필요 없다
또 한잔 음복주 생각
간절하실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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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귀 뀌듯 아주 사소한 일’이란 뜻의 제주 속어.
♧ 호구虎口
날 새면 한의원 갈까
병원에 그냥 갈까
오냐오냐 받아주니 성한데 하나 없다
바둑판
아다리치듯
날 떠미는 세상아
♧ 다시, 쓰다
봄이면 버릇처럼 전정가윌 만진다
감귤나무 생목숨 다비한지 10년 만에
아들놈 첫 월급 털어
감귤나무 또 심는다
생각 없이 받아든 몇 푼의 폐원보상비
참깨 기장 양배추 별별 농사 다 해봤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도로아미타불 같은
일수 찍듯 서둘러 밭으로 나서는 길
죽어라 김을 매도 돌아서면 무성해지는
이 땅에
몸으로 쓰는,
몸으로 쓰는 영농일기
♧ 몸으로, 갑년
기막혀라!
내 몸이 이미 갑년을 아는 걸까
이 병원 또 저 병원 쇼핑하듯 드나들면
여섯 살 손녀딸 비누에 슬그머니 손이 간다
삶의 어느 길목인들 가려움이 없었으랴
늦가을 늦바람처럼
느닷없는 성인아토피
휘파람 그 인연 하나 매복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세상은 숟가락을 세다 가는 일
성성하던 억새도 바람에 몸 맡기듯
육순의 헛헛한 몸뚱이
세월에나 맡긴다
* 문순자 시집 『어쩌다 맑음』(황금알 시인선 209, 2020)에서
* 사진 : 어제 ‘서중천 탐방로’에서 본 꽃들(2020.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