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문순자 시인의 꽃시편
김창집
2020. 6. 18. 22:54
♧ 괭이밥
길고양이
배고프면
무얼 먹나, 괭이밥
길고양이
배 아프면
무얼 먹나, 괭이밥
이 봄밤
노란 그리움
나도 한 술 떠낸다
♧ 꽃기린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일 년 내내
그 짓 하네
수은주 뚝 떨어져도
밥 먹듯 그 짓 하네
허접한
가시면류관
꽃불 켰다, 껐다 하네
♧ 붉은 찔레꽃
의정부 언니 대신 조카가 찾아왔다
그나마 알아볼 때 얼굴 한 번 본다고
열네 살, 고향을 떠난
언니 대신 찾아왔다
난생처음 만나는 돌염전 외할머니
아무 말도 못하고 연신 손만 쓰다듬는
백 살의 어머니 눈에 반세기가 흐른다
때마침 병실 TV, 젖어드는 가요무대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오늘밤 천리객창에
불빛 하나 떠돈다
♧ 향일암 동백
적어도 소원 하난 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바다 건너왔는데 본척만척 금동불상
금오산 절벽 한 자락 동백에나 빌어본다
♧ 꿀풀
더도 덜도 아닌
아홉 살 눈부처다
삼단 같은 머리칼
알미늄솥 바꾸던 날
덤으로 덤으로 받은
어머니 부로치다
♧ 왕관무릇*
돌고 돌아도 그 자리
베두리오름 그 자리
너도 나도 한 자리
감투를 돌려쓰듯
6•13
끝나자마자
대관식을 치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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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관무릇은 아가판서스의 우리말 이름.
*문순자 시집 『어쩌다 맑음』 (황금알 시인선 209,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