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문순자 시인의 꽃시편

김창집 2020. 6. 18. 22:54

괭이밥

 

길고양이

배고프면

무얼 먹나, 괭이밥

 

길고양이

배 아프면

무얼 먹나, 괭이밥

 

이 봄밤

노란 그리움

나도 한 술 떠낸다

 

꽃기린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일 년 내내

그 짓 하네

 

수은주 뚝 떨어져도

밥 먹듯 그 짓 하네

 

허접한

가시면류관

꽃불 켰다, 껐다 하네

 

붉은 찔레꽃

 

의정부 언니 대신 조카가 찾아왔다

그나마 알아볼 때 얼굴 한 번 본다고

열네 살, 고향을 떠난

언니 대신 찾아왔다

 

난생처음 만나는 돌염전 외할머니

아무 말도 못하고 연신 손만 쓰다듬는

백 살의 어머니 눈에 반세기가 흐른다

 

때마침 병실 TV, 젖어드는 가요무대

~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오늘밤 천리객창에

불빛 하나 떠돈다

 

향일암 동백

 

적어도 소원 하난 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바다 건너왔는데 본척만척 금동불상

 

금오산 절벽 한 자락 동백에나 빌어본다

 

꿀풀

 

더도 덜도 아닌

아홉 살 눈부처다

 

삼단 같은 머리칼

알미늄솥 바꾸던 날

 

덤으로 덤으로 받은

어머니 부로치다

 

왕관무릇*

 

돌고 돌아도 그 자리

베두리오름 그 자리

 

너도 나도 한 자리

감투를 돌려쓰듯

 

613

끝나자마자

대관식을 치르네

 

---

* 왕관무릇은 아가판서스의 우리말 이름.

 

 

                             *문순자 시집 어쩌다 맑음(황금알 시인선 209,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