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와 자생란

김창집 2020. 6. 20. 10:18

 

몸 뒤집기 강영순

 

오늘 우리 둘째 손녀 해윤이

몸 뒤집기 성공했다고

며느리 들뜬 음성

 

카톡 영상

아주 천천히 느긋이

봄날 꽃봉오리 벌어지듯

몸 뒤집기

 

때가 되면 이루어지리라

성현의 말씀

 

기특하고 갸륵한 저 모습

감회가 별나서

 

아껴둔 산채 꺼내

무치고 볶고 지져서

모처럼 환한 마음

축하주 한 잔

 

 

수양버들 국중홍

 

봄바람 분다

 

날리는 긴 머리칼

휘휘 붓질하며

물 위에 그림을 그린다

 

화폭에 다소곳이 앉은 물풀

살아 움직이는 버들

 

바람 따라 흔들리다가도

잠잠히 고요해지면

 

눈 감고 가다듬는

저 여유

 

닮고 싶다

 

 

개망초꽃 - 김귀녀

 

길가 풀숲

빈 집에

바라보는 이 없어도 핀 꽃

 

당신 있는 곳이 환한 것처럼

, 당신에게

곁에 오래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눈이 부시도록 고운 꽃은

아니지만

 

함께한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허허로운 사람끼리 기대어 살자구요

내일이 올 때마다

기척하며 살자구요

 

 

무아의 그늘에 앉아 - 김내식

 

비탈진 산 오르내리다

나무그늘에 앉아 두 눈 감고

숨을 고르니

땀구멍을 열어 놓고 치솟던 체온

갑자기 어느 순간

서늘하다

실눈 지그시

무아의 경지에 문고리 잡고

이승을 다시 보니

산벚나무 꽃잎이 떨어진 자리

나비 한 마리

날아올라

이름 모를 들꽃으로

너울너울

극락이 어디에 따로 있다

살아있는 내 마음

중심인 것을

 

 

밤빛 머리 새 떼 - 김영자

 

폭우가 끝난 후

 

7월 초 장마 끝에서

축축한 바람을 걷어내며

저녁 햇살을 몰고 온

밤빛 머리 새떼

 

나뭇가지에 앉아 노을을 몰고

편안한 밤을 위해

작은 날개를 저리 열고 있는가

 

오늘밤에는 숲이 걷는 소리 들으며

밤빛 머리 새떼의 노래를

내 손등 푸른 정맥 속으로 흐르게 할까

 

나팔꽃 한 송이씩 피어내는 담담한 힘을

 

 

            * 산림문학2020년 여름호(통권38)에서

            * 사진 : 위에서 차례로 키다리난초, 갈매기난초, 금난초, 대흥란, 잠자리난초, 은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