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우리詩' 2020년 7월호의 시

♧ 우이천에서․2 - 洪海里
물은 천 개의 칼을 갖고 있다
햇빛에 칼을 갈면,
물의 가슴은, 꽃 같은
너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 꽃잔디 – 이규홍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꽁꽁 묶고 있을 때
꽃밭 가득 번져가는
꽃잔디처럼
마음의 거리 좁히며
삶의 터전 지켜내는
소상공 자영업자들
일용직 근로자들
비정규 노동자들
이 자잘한 꽃들에게도
단비 같은 재난지원금
보너스 근로장려금까지
듬뿍 뿌려주고 싶다

♧ 거리 두기 – 도경희
새 풀잎 따서
치금을 부는 사월
입술에 노래를 담고
아른아른 손짓하는 복사꽃
한껏 만발해
꿀을 따는 직박구리
필필필
짧은 탄식 내뱉으며
고개를 저승 쪽으로 접는다
신산한 결 겹겹 무늬 진 손이
꽃을 솎는다
금방 피어났다가
흙으로 물로 바람으로 돌아가는
어린 영혼이 있어
수천 겹 눈물이 감싸고 있는
무구한 살점이 있어
노을도 가깝게 내려와
뭉근한 숯불처럼
덧나던 그리움도
울음이 마르는가
새 풀잎 따서
치금을 부는 사월

♧ 그렇게 살자 – 김기화
기적소리도 없는 산골 숯강아지였다.
걸어온 길 후회하지 말자
서둘지 말자
권세에 물들지 않고
명예에 목메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다
正義에 앞서고
不義에 날 세웠다
그렇게 살았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어도
풍요로운 세상은 조각도 못했다.
그렇게 살았다
서녘하늘이 찬란하게 타오른다
산에 들에 익어가는 열매도 향기롭다
그렇게 살자.

♧ 바람의 원두막 – 강계희
지도에도 없는 바람
그 근육들 모아서
엮어 세원 원두막
세월의 원두막
바람들이 모여
더하고 더한
시간들
애틋한
애정의 갈피들로
매듭 묶어서 키운
열매들을 잉태하고
수없는 바람이
자고 간 자리엔
원두막의
농익어가는
생각들로 멈춘다.

♧ 누에 – 정옥임
종이에 빼곡 실은 알
깨어나 허물 벗고
회색 애벌레 누에 변신
일본 요괴 키메라 변신
먹고 자고 넉잠 내내
일제히 고개 쳐들고
공중에 날아오르는 자세
경건한 잠 의식
누에 흰 나방 꿈의 서원
먹지도 쉬지도 않고
고치실 자아 번데기 오름
짚단 골골마다
듬성듬성 꿈을 걸어
새가 되었다

♧ 더덕 – 김정서
가는 싹줄에
아래로 매달린 족두리
꽃이었던가!
얼기설기 붙은 잎 섶이라도 여미었나
땅심에 길들여져
다랑논 비늘 같은
돋을새김의 상흔들이
심란하다
고단한 겉살 걷어내니
백삼이라 했던가 하얀 속살에
저며 나는 뽀얀 진액
단내인가 쓴내인가
찐득이는 밤낮을 닦아내며
정수리부터 갈라보니
가슴 아래 길게 박힌 검은색 옹이
아!
너 어미였구나.
*월간『우리詩』2020년 07월(통권385)호에서
*사진 : 요즘 한창 피어나는 삼백초 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