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천 시 '노구' 외 1편

♧ 노구 외 1편 - 김혜천
아름드리 느티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다
저마다 깊숙한 옹이 한두 개씩 품고 있는 나무들
굴곡진 나무들을 안으로 새겨
단단하고 고집 센 무늬를 새겨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터널을 달려왔다
시간은 상처와 희열을 포함한 정동精動의 기록
구멍을 들여다본다
들여다본다고 깊은 속내를 가늠이야 하겠는가
거칠수록 속살 보드랍고 결기에 차
가지마다 푸르게 푸르게
그늘을 달아
갓 태어난 어린 숨결 받아내고
행인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살아오면서 품은 옹이들이
누군가 디딜 수 있는 언덕이라면
지친 몸 쉬어가는 그늘이라면
그 사유만으로도 마음이 벅차
옹이 박힌 거친 손 내밀 수 있겠다

♧ 느티나무를 읽다 - 김혜천
뼈대 있는 가문이다
생애의 무드라다
가을 떠난 전등사 마당
뒤틀어진 어깨 갈라지고 굽었다
골수를 태우며 버텨낸 상처
어떤 허물이 저보다 장엄할까
허공도 기대어 쉬는 노구의 기개가
삼랑성을 넘는다
병란을 지키던 병사들의 절규
사랑을 배반당한 도편수의 절규
숱한 방황들을 품 안에 재웠으리라
텅 비어 있는 몸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묻는다
어깨를 감싸 안는 나직한 음성
“내 다 안다”
누가 가셨는지 시다림이 끝나고
또 하나의 영혼이 천 년 숨결에 안긴다

* 교래리 팽나무 고목
일요일 오름에 다녀오다가
남조로변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독특한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고목 팽나무 큰 가지 사이로
작은 가지가 보이는 모습이
마치 달 속에 계수나무 박힌 것 같은
모습으로 찍은 것이다.
주인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그 팽나무는 수령이 한 300년쯤 되는
가게 앞에 있는 보호수다.
수고(樹高) 약 7m, 둘레 4m의 팽나무는
줄기와 굵은 가지에 일엽초가
마치 털처럼 돋아나 있다.
느티나무나 팽나무는 다 느릅나무과로
정자나무로 많이 심는다.
보통 한반도 남쪽 제주도나 섬에서는 팽나무,
그 외 지역에서는 느티나무가 많다.
일엽초가 덮여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
돌아가면서 찍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