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오승철 '돌가마터'외 6편과 흰광대나물
김창집
2021. 2. 16. 22:46
♧ 돌가마터
그렇게 팔자 센 땅
그 흙으로 너를 빚어
이대로 굳으리라, 금가면 금이 간대로
길 하나 돌려세우고
모슬포로
가는
길
♧ 가을 하늘
운동장 한복판에 하얀 선을 그리듯
저렇게 제트기가 가을 하늘 긋고 가면
오늘 밤 북두칠성도 반쪽으로 잘리겠다.
♧ 선흘리 먼물깍
그나저나 동백동산 그 너먼 가지 마라
4․3땅 곶자왈길 물허벅 넘던 그 길
아직도
출렁거리는
내 등짝의 먼물깍
♧ 내 사랑처럼
어쩌다 이끌려 와 아침저녁 조아리던
조천포구 그 뱃길들
말끔히 지워낸 지금
아직도 유배중인지 연북정*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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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戀北亭) : 유배인들이나 관리들이 아침저녁 한양을 향해 절하던 정자.
♧ 유달산 낮 열두 시
목포항 뒷골목은 인적마저 썰물이다
오래된 홍어 맛 같은
오래된 이름 하나
정오포正午砲* 발사하듯이 날아가는 장끼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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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에는 낮 12시를 알렸다는 포가 있다.
♧ 닐모리동동
바다에서 돌아와
숨비소리
널고 나면
물마루 몰래 건너
어깨를 툭 치는 달
헛제사
차리다 말고
가지깽이 댕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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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요 한 소절. 가지깽이는 밥주발 뚜껑의 제주어.
♧ 주전자
기차처럼 떠나네
그리움 다 내뿜고
달강달강 온몸으로 감당해낸 끌탕의 세월
가을볕 아래서 보면
아,
저 금빛 관음불상!
*오승철 시조집 『길 하나 돌려세우고』(황금알,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