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1 하반기 제17호의 시(3)

김창집 2021. 12. 18. 11:12

 

다시 가을에는 - 윤봉택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저 하늘 바람 구름 빗방울

저 대지 바위 틈 나무 풀 꽃이

있어서라네

 

험한 저 길이

아름다운 것은

저분 걸음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길,

 

지금,

무엇이 두려우신가

돌아보면

하늘빛으로 열어 오시는

아이들 소리

 

걸음걸음으로

빗장 열어 주시나니

 

 

마른내(乾川)의 기원 - 강태훈

 

밤새 울던 천둥소리 멎었다

냇물이 넘쳐흘러서

포구로 달려와 소용돌이친다

 

오랜 기다림이 아쉬워서

이렇게 거품 물고 포효하는가

 

꽃 피고 새 우는 오름 지나

굽이굽이 흘러 왔지만

태양이 얼굴 내밀면

나의 운명도 쉬이 거덜 난다

 

사시사철 흐른다는 것

마른내의 간절한 비원

 

하늘이고 싶다

땅이고 싶다

샘물이라도 콸콸 솟아라

저리도 절절히 살아나는 염원.

 

 

연두에 홀리다 우은숙

 

연두에 홀리다

오랜 허기 때문이다

다가온 봄 한나절

생각이 머무는 곳

연하게

부풀린 입술

마음을 빼앗겼다

 

갓난 숲을 걸었다

자유를 배웠다

궁핍한 기억들도

반으로 접었다

푸르고

환하게 핀 잎

맘 그늘에 피었다

 

 

중도 3 오영호

 

  떨어진 은행잎이

  바람 따라 굴러가는

 

  극락전 잔디밭을 걷고 있던 스님 둥기 둥거문고 소리에 걸음을 멈추자 큰 스님, 저 소리는 무슨 소리입니까? 조율이 잘 된 거문고 소리야 조율이란 무엇입니까? 줄을 너무 조이면 줄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으니라 딱 맞아야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느니라 행자도

 

  조율된 거문고처럼 정진해야 하느니라

 

 

고향길 이창선

 

은하길 열어놓은

동심의 흙수원*

 

은발의 사내가

옛길을 찾아들자

 

노변에

만개한 들국화

반겨주듯

나를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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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원 :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도원)2407번지 일대

 

 

포구, 큰갯물 - 김희운

 

바위배기 햇살 앉아 조잘조잘 바람 탄다

 

물질에 바릇잡이

이승 저승 출렁이는

자맥질 안캐 중캐 밧캐 칠성판 져 드나들고

 

사람 냄새 바다 냄새

채워놓은 불턱 온기

거친 파도 동여매고 순비기꽃 피워내면

 

물숨이 내어준 자리

 

또 한 생을 닫고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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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포동, 제주의 포구는 뭍으로부터 안캐-중캐-밧캐로 이뤄진다.

 

 

                             * 혜향문학2021 하반기 제1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