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도경 시집 '어른아이들의 집(集)' 발간

김창집 2021. 12. 27. 01:18

 

시인의 말

 

철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어른아이가 되기로 했습니다

 

순하고 맑은 희망들이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어른아이었습니다

 

202111

김도경

 

 

어른아이들

 

  퐁당퐁당 돌을 던지며 놀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어요 퐁당퐁당 떨어지던 돌이 풍덩풍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신나게 던진 돌에 지나가던 개가 맞는가 하면 사람이 맞기도 했는데 풍덩풍덩 던진 돌은 생각 없이 적중할 때가 많아서 피 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어요 어른아이들은 피가 노란 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란색 리본을 볼 때면 정의가 떠올랐던 것인데 정의는 누구네 집 개 이름 같기도 했어요 그 누구는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았어요 퐁당퐁당 돌을 던지면 예쁜 누나가 빨래하고 잔물결이 손등을 간지럽힌다는 동요를 흥얼거렸지만 돌은 풍덩풍덩 떨어져서 피를 봐야 하고 예쁜 누나는 목숨을 걸어야 하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에서 정의는 개밥이 되었어요 불가촉천민은 감히 올려볼 수 없는 애견 사료 애견 미용실 애견 테라피 애견 호텔 애견 병원 애()는 견()의 지위를 확고하게 지지했어요 애()가 인()의 편에 설 때까지 어른아이들은 돌을 풍덩풍덩 던져야 한다는 사명을 느꼈어요 정의는 노란 리본에서 상기될 뿐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은 정의가 비일비재했어요 어른아이들은 애()가 견()을 지지하는 시냇물에 발을 담갔어요 풍덩풍덩 물장구를 쳤어요

 

 

나도공단풀

 

공단풀이 처음 발견된 곳

 

희망과 아픔이 공존하던 곳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밀접지역

 

외국인 노동자의 안식처

 

구로공단 싼 숙소의 대명사

 

쪽방 벌집촌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나도 나도 나도공단풀

 

 

찬란한 묵념 1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일용할 양식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라는 자만을 버리고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았고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꿀 때

벼는 중화학 공업에 자리를 내주면서도 농민들과 아픔을 같이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구원의 메시아!

 

점심 한 끼 놓치고 도청 앞을 지나가던 날

농민들이 피켓 들고 외쳤다

우리 농민 다 죽는다!”

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수입산 가격표가 붙은 곡물 소고기 과일 야채

집었다 놨다를 몇 번 하다가

가격 대비 수입산 곡물을 집어 들면서

양심적으로 아멘!

 

우리 농산물의 부활을 믿는다

응원하는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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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 노래 가사.

 

 

터진목

 

다시 찾은 그곳

빗돌이 서 있다

‘43유적지

 

그땐 보이지 않았다

 

검붉은 하늘과

비늘구름과

서늘해지던 심장

그리고

 

눈 감고 귀 막고

70여 년 삭여온 바다

학살 터에서

그만 바라봤던

 

영혼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물고는 터야 한다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갈매기들

하늘이 푸르다

 

 

견해

 

극적인 우연에 시나리오는 없다

주인공 노파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고

사람들 속에서 행인으로 등장하는 나는

걸음 멈추고 노파를 주시한다

 

세밑 동물병원 앞 보도블록!

 

빙판 진 바닥에 돌풍이 몰아친다

자리를 깔고 열쇠고리를 진열하는 노파

잦은 기침이 자동차 경적에 묻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무조건 행복하다

노파가 지낼 설에 대해 관심 두지 않고

설맞이 장사에는 떡국 재료가 어울린다는 표정으로

파트라슈와 네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쿨럭쿨럭 기침은 쉴 새 없고

곱은 손 굽은 등 뒤로 보이는

노견 전문 병원

 

통유리에 붙은 빨간 글씨가 유독 환하다

노견과 노파 사이에 어둠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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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더스의 개주인공.

 

 

                           * 김도경 시집 어른 아이들의 집()(한그루 시선, 2021)에서

                                              * 사진 : 눈 내린 곳에 가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