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양성평등 지원사업 '시화전'의 시조(2)

김창집 2021. 12. 31. 00:03

 

꽃들도 썸 탄다 - 조한일

 

따라비오름 오르다 사스레피나무 스칠 때면

 

나무를 점거하고 웅성대는 암꽃 수꽃

오르막 군데군데 봄 오면 찰랑 딸랑

종소리로 유혹하고는 묘한 냄새 쓱 풍긴다

 

꽃들도 사람과 썸 탄다 암수가 따로 없네

 

 

연리목 보다 오영호

 

걷는다

한라생태숲

멈추게 하는 두 나무

 

날씬한 때죽 여자와

우람한 고로쇠 남자

 

결연한

천년의 사랑

증언하듯 서 있다

 

 

목화 - 이애자

 

열두 근 깔고

다섯 근 덮고

포근포근

꽃의 무게

 

수만 송이

덮고 잤다니

수만 송이

깔고 잤다니

 

뜨겁게 맺은 열매가

나였단 말이지

 

 

평등의 조화 이창선

 

꽃들에게 곱다 궂다

등급은 부질없는 일

 

오직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뿐

 

벌 나비

자유로운 유희

꽃향기에 노닌다

 

 

시대변천사 - 장영춘

 

아들네 집에서 저녁 식사 마치고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는 아들을 보며

돌아와 한숨 못 잤다고

푸념하던 옆집 엄마

 

그런 시절 있었지, 가부장적 시대론

출세를 내세우며 책상 위에 앉혀 놓고

맹목적 내리사랑으로

등 떠밀던 어머니

 

강산이 몇 번째 바뀌더니 너도나도

퇴근하면 달려가 집안일 분담해야 하는

진즉에 그랬어야 했어,

공평한 세상이지

 

 

운주당 수선화* - 한희정

 

꽃이 피는 뜻은 꽃만이 알 일이다.

달빛에 글을 읽던

수선의 마음일까

정결한

꽃의 권리는

섬을 넘어 피었다

 

소명인 듯 운명인 듯 얼지 않는 향기였다

,

그 이름만한

걸음걸음 희망이길래

은반의

서릿발조차

가슴으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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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선각자 우인 고수선을 말함.

 

 

                 *시조 작품 : 2021년도 제주특별자치도 양성평등 지원사업

            시집, 시화전 그 이름에 나는 없어(제주시조시인협회,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