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지원사업 '시화전'의 시조(2)
♧ 꽃들도 썸 탄다 - 조한일
따라비오름 오르다 사스레피나무 스칠 때면
나무를 점거하고 웅성대는 암꽃 수꽃
오르막 군데군데 봄 오면 찰랑 딸랑
종소리로 유혹하고는 묘한 냄새 쓱 풍긴다
꽃들도 사람과 썸 탄다 암수가 따로 없네
♧ 연리목 보다 – 오영호
걷는다
한라생태숲
멈추게 하는 두 나무
날씬한 때죽 여자와
우람한 고로쇠 남자
결연한
천년의 사랑
증언하듯 서 있다
♧ 목화 - 이애자
열두 근 깔고
다섯 근 덮고
포근포근
꽃의 무게
수만 송이
덮고 잤다니
수만 송이
깔고 잤다니
뜨겁게 맺은 열매가
나였단 말이지
♧ 평등의 조화 – 이창선
꽃들에게 곱다 궂다
등급은 부질없는 일
오직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뿐
벌 나비
자유로운 유희
꽃향기에 노닌다
♧ 시대변천사 - 장영춘
아들네 집에서 저녁 식사 마치고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는 아들을 보며
돌아와 한숨 못 잤다고
푸념하던 옆집 엄마
그런 시절 있었지, 가부장적 시대론
출세를 내세우며 책상 위에 앉혀 놓고
맹목적 내리사랑으로
등 떠밀던 어머니
강산이 몇 번째 바뀌더니 너도나도
퇴근하면 달려가 집안일 분담해야 하는
진즉에 그랬어야 했어,
공평한 세상이지
♧ 운주당 수선화* - 한희정
꽃이 피는 뜻은 꽃만이 알 일이다.
달빛에 글을 읽던
수선의 마음일까
정결한
꽃의 권리는
섬을 넘어 피었다
소명인 듯 운명인 듯 얼지 않는 향기였다
첫,
그 이름만한
걸음걸음 희망이길래
은반의
서릿발조차
가슴으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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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선각자 우인 고수선을 말함.
*시조 작품 : 2021년도 제주특별자치도 양성평등 지원사업
시집, 시화전 『그 이름에 나는 없어』 (제주시조시인협회,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