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시집 '포엠만경' 제10호의 시들(1)
♧ 목동과 양떼 – 강상기
목동과 양은
몽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나라에는 몽골보다 더 많다
초지가 넓지 않아
양떼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자본 사이를 맴돌며 생명의 풀을 뜯는다
해 저물어 우리에 양떼들이 들어가면
목동은 양머리의 수익을 계산하며
천국의 꿈에 깊이 빠져든다
♧ 장다리꽃 – 김광원
한겨울 배추 한 포기
끼니마다 뜯기더니
섣달 보름 한 잎 한 잎
설 아침에도 한 잎 두 잎
우수 앞두고
차
마뜯
지못할
싹노랑
조막손
종재기로 옮겨 열흘
또 열흘 손을 모으더니
쑤욱-
어쩌지 못해 솟아났어라.
‘금-쪽-햇-살’
♧ 섬 또 하나의 그리움 7 - 김양호
나는 밤새도록 갯바람이었다
그리고 파도였다 때로는 바다였고 등대였다
어느새 수평선이었다가 갈매기였다가
그 언젠가는 작은 암초에서 드디어 바위가 되었다
그러다가 새벽녘
수평선과 모래 조개를 가슴에 품고서 아침 해를 맞았고
비로소 내가 섬으로 앉는다
♧ 꽃 공양 - 박윤기
시골 초상집 마당가.
농협 빚으로 송두리째 타버린
숯검댕이들,
추렴하여
모닥불을 피운다.
홀로 헛헛하게 살다
기척도 없이 가신 망인 기리며
막걸리 몇 순배로
이슥토록 불꽃 사르고
객지로 돈벌이 떠난
상주도 오지 않은 이른 새벽
살바람이 살구꽃 가지 흔들고 간다.
마지막 비우고
토방에 내놓은 자장면 그릇 위
저승길 밝히라고 하염없이
내려앉은 꽃잎.
♧ 잠자는 숲속의 미녀 – 박환용
이웃집 금송아지도
우리집 은수저도 잊어버리고
잘도 잔다
내일의 걱정도
오늘의 기쁨도 잊어버리고
잘 잔다
♧ 더디 오는 너 - 최기종
너, 부르면
화살처럼 달려 올 줄 알았다
적어도 끊어진 다리 새로 놓거나
막아서는 산들 넘거나 휘돌아서
오늘이나 내일 환하게 웃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지 않는 너,
산사람이 되어서 언 발 도려내면서도
피의 대가를 보상하라고 거리행진하면서도
저곡가 저임금 정책에 신음하면서도
내내 기다렸다
온전한 너이고 싶어서
살아남은 자의 의무로 남은 불씨 되살리면서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스크럼을 짜고 산산이 부서지면서도
대추리가 깨지고 구럼비가 깨지고 밀양이 깨지고 성주가 깨지면서도
오체투지로 길을 내고 풍등을 날리면서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그런데 오지 않는 너,
산이 높아서도 아니었다
물이 깊어서도 아니었다
철조망이 막아서도 아니었다
바다가 흉흉해서도 아니었다
너, 부르면
등 뒤에서 가쁜 숨 몰아쉴 줄 알았다
온전한 네가 되어서
평화롭게 아름답게 사람답게 살아갈 줄 알았다
더디 오는 너
* 동인시집 『포엠만경』 제10호(2021)에서
* 사진 : 섬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