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들(1)

김창집 2022. 3. 9. 00:16

 

엄마 임보

 

한 방송사가 주관한 국민가수 경연대회에

50세의 무명가수*가 등장하여

 

기타와 휘파람으로 애절한 반주를 넣어 가며

자작곡 엄마를 불러 세상을 울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는 한 마디 말을

어린 염소새끼처럼 울부짖으며

 

3억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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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 가수.

 

 

 

할 말을 생각하다 보면 정순영

 

할 말을 내면의 거울에 비추어서 흐릿하거나 부끄러우면 속으로 묻어둔다

 

할 말을 생각하다 보면 듣는 이의 가슴이나 귀의 크기에 따라

곰곰이 사려思慮

부글부글 익어서 향기로운 술이 된다

 

그러나 새벽이슬에 설레는 여명 같은

할 말을 생각하고 기다리다가 떠나 버린 사람도 있다

그때 그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은

한숨과 눈물의 옹달샘이 되어 가슴에 웅크리고 있다

 

 

 

벌집구멍장이버섯 - 심종록

    - 불장난

 

불장난 한다

오갈병 든 대추나무의 불꽃 바라보는 일

삼세의 비밀을 엿보는 일이기도 해서

기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때로 경이롭기까지

불꼬챙이 들쑤셔 시드는 가짓불 살리면

날아오르는 불티, 지난날

갠지스강 화장터의 삼신할미가

덧불 잘못 피우는 바람에 태워버린 三界火宅삼계화덕의 서까래였던 존재

무너지는 불더미 속에서 날아오른 불티 되어서는

험한 카르마의 해저 떠돌다

파도에 휩쓸려

남쪽 바닷가 此岸차안으로 떠밀려 온

꺼질락말락 위태로운 숨

상처 입은 짐승처럼 몰아쉬다 기사회생해서는

2021년 시월의 마지막 날 밤을 시나브로 태우고 있는 것인데

빕더선 화상이 퉁을 놓는다

애들이여 불장난이나 하게?

어린아이처럼 생각지 못하면

하늘나라는 없으니*

十方三界십방삼계 모조리

불꽃의 일렁거림이나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 내일은

벌집구멍장이버섯으로나 태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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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1015절에서 빌려옴.

**화엄경一切唯心造라는 말도 있거니와, 바가바드 기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육신을 버릴 때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음의 삶을 얻으리라. 그의 생각이 몰두해 있는 그 상태를 그는 얻게 되리라.’ 한편 구약의 지혜서237절에는 생각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역병 박원희

 

구제역이 걸리면 인근 가축들은 매몰하고

AI가 발생하면 인근 닭, 오리, 메추리 등은 모두 매몰하고

 

코로나 19가 창궐하니 사람들이 모두 살려고 아우성친다

 

가축들에게는 인간이 신이고

 

인간에게 신은

오늘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우리가 꽃이라면 - 이화인

 

어느 하늘 아래 어느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나 사랑하고

우리가 꽃이 될 수 있다면

너와 내가 나누었던 사랑의 밀어가

찬란한 꽃밭을 이루리

우리가 꽃이 될 수 있다면

너는 각시붓꽃이 되어

외롭고 쓸쓸한 산모루에 별을 심어

희망과 기쁨을 주리니

나는 초롱꽃으로 피어

저문 길을 홀로 걸어가는 삶에 지친

가난한 연인을 위하여

어둠의 길을 비추리

세찬 비바람에도 희미한 등불 하나

너 오는 길을 밝히리.

 

 

 

우수 민구식

 

창을 열면

영화 한 편이 상영됩니다

묵정밭에 내리는 비가 보입니다

오래된 활동사진이 줄무늬를 그어가며

낮은 말로 나무와 풀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꿈틀꿈틀 뒤척이는 발아래서

빨리 빨리 일어나 달려가라고

아우성이 들립니다

 

지천시 知天時* 후두티 한 마리

남산 너머 남풍, 점점 빠르다고

봄이 하루에 십리를 달리고 있다고

시끄럽게 소식을 전합니다

 

예고편은 곧 끝날 것 같습니다

나도 채비하고 영화 송으로 들어가

질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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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시 - ‘후투티새를 일컫는 다른 이름. 후투티가 울면 농사일이 시작되는 때를 알린다고

 

 

          * 월간 우리20223월호(통권405)에서

          * 사진 : 분홍빛 광대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