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숙 시집 '장미 연못'의 시조(2)
♧ 남천
그만 내려놓으라고 네게 연신 되뇌지만
저 성성한 남쪽 하늘 차마 놓을 수 없던
눈가에 번지는 눈물, 이내 붉게 맺혔네
모퉁이를 돌아서면 한 생의 그 흔적들
바람 타 흩어지는 꽃잎처럼 속수무책
마른 몸 기도 품었듯, 기척 없이 새순 돋네
♧ 갯방풍
이호방파제 해안도로에 편입되어 사라진
해안가 뿌리 내렸던 작달막한 갯방풍들
매립 땅 발걸음 옮길 때 울음소리 들렸다
장맛비가 산중턱 건천에서 흘러들 듯
왼편 가슴께로 기울어 절로 일던 네 생각
늦은 밤 가로등 붉은빛 상처인 듯 아리다
수장을 치러낸 듯 꽝꽝 다진 시멘트 바닥
몸이 더 납작해졌을, 못 일어섰을 갯방풍
새벽녘 바다 쪽으로, 끝내 길 나설 것 같다
♧ 선인장
꽃!
하고 주웠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내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 계요등
계요동꽃 비양봉 등대 향해 오른다
물빛을 가두어 불 밝히려 하는지
벼린 잎 시퍼런 가슴
그마저 껴안았다
섬에 발 딛자마자 마음 접은 일 알아챘나
갯가 정자 마늘 까던 그 손톱에 전 때처럼
햇볕은 물고 늘어진다.
한 천 년 더 기다리라고
♧ 먼지버섯
그래도 목마르거든 묻지 말고 가시랴
누구의 찬송 같은 주일 오후 산새소리
장마철 내 옷에 아득, 그 얼굴이 보인다.
기약도 포자처럼 훌훌히 사라지면
나는 또 어느 숲에 한 목숨 놓았다가
눈물빛 새 소리에도 공연히 부푸는가
성가신 사랑니 같은 십년 된 중고 냉장고
모터를 갈아 끼워도 툴툴대는 이 그리움
별똥별 한 획의 하늘, 내 앞에 길 세운다
♧ 천상쿨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야생풀 그 이름으로,
다시 돌담 위로 솟구쳐 길가 밭 가득이다
서둘러 제 영토 늘리는
폭염의 여름 한나절
수산집 가는 길은
풀씨도 함께 나서는데
먼 이국 큰형님 마지막 인사이듯
깃털의 무장 움직임
손사랜 듯 눈 시리다
우리들은 남겨진
그대로 바람 타는데
오늘 따라 저 잡풀의 끈질긴 생명력에
끈 하나 툭, 풀려버린
그 길이 자꾸 밟혀든다
*김윤숙 시집 『장미 연못』 (책 만드는 집, 201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