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윤숙 시집 '장미 연못'의 시조(2)

김창집 2022. 3. 11. 06:04

 

남천

 

그만 내려놓으라고 네게 연신 되뇌지만

 

저 성성한 남쪽 하늘 차마 놓을 수 없던

 

눈가에 번지는 눈물, 이내 붉게 맺혔네

 

모퉁이를 돌아서면 한 생의 그 흔적들

 

바람 타 흩어지는 꽃잎처럼 속수무책

 

마른 몸 기도 품었듯, 기척 없이 새순 돋네

 

 

 

갯방풍

 

이호방파제 해안도로에 편입되어 사라진

해안가 뿌리 내렸던 작달막한 갯방풍들

매립 땅 발걸음 옮길 때 울음소리 들렸다

 

장맛비가 산중턱 건천에서 흘러들 듯

왼편 가슴께로 기울어 절로 일던 네 생각

늦은 밤 가로등 붉은빛 상처인 듯 아리다

 

수장을 치러낸 듯 꽝꽝 다진 시멘트 바닥

몸이 더 납작해졌을, 못 일어섰을 갯방풍

새벽녘 바다 쪽으로, 끝내 길 나설 것 같다

 

 

 

선인장

 

!

하고 주웠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계요등

 

계요동꽃 비양봉 등대 향해 오른다

물빛을 가두어 불 밝히려 하는지

벼린 잎 시퍼런 가슴

그마저 껴안았다

 

섬에 발 딛자마자 마음 접은 일 알아챘나

갯가 정자 마늘 까던 그 손톱에 전 때처럼

햇볕은 물고 늘어진다.

한 천 년 더 기다리라고

 

 

 

먼지버섯

 

그래도 목마르거든 묻지 말고 가시랴

누구의 찬송 같은 주일 오후 산새소리

장마철 내 옷에 아득, 그 얼굴이 보인다.

 

기약도 포자처럼 훌훌히 사라지면

나는 또 어느 숲에 한 목숨 놓았다가

눈물빛 새 소리에도 공연히 부푸는가

 

성가신 사랑니 같은 십년 된 중고 냉장고

모터를 갈아 끼워도 툴툴대는 이 그리움

별똥별 한 획의 하늘, 내 앞에 길 세운다

 

 

 

천상쿨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야생풀 그 이름으로,

다시 돌담 위로 솟구쳐 길가 밭 가득이다

서둘러 제 영토 늘리는

폭염의 여름 한나절

 

수산집 가는 길은

풀씨도 함께 나서는데

먼 이국 큰형님 마지막 인사이듯

깃털의 무장 움직임

손사랜 듯 눈 시리다

 

우리들은 남겨진

그대로 바람 타는데

오늘 따라 저 잡풀의 끈질긴 생명력에

끈 하나 툭, 풀려버린

그 길이 자꾸 밟혀든다

 

 

                   *김윤숙 시집 장미 연못(책 만드는 집, 201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