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업 시선집 '달빛 무게'의 봄 시편(2)
♧ 봄이 두려운 건
꽃 피기 때문입니다
피었다 지는 일 일상이겠지만
꽃피면 더 두려운 건
꽃 지기 때문입니다
♧ 봄비
꽃 진다
쑥밭재 산벚꽃 다 진다
어차피 질 운명이라지만
가벼운 제 몸도 어찌할 수 없는,
저 속절없는 절망 위에
아린 눈물을 보태는
너는 도대체 누구
♧ 환절기 독감에 대한 처방전
가슴 답답하여 말은 하고 싶으나 목이 잠기고
시도 때도 없이 미열은 일어, 정신은 멍하니
걸음은 자꾸 허방을 짚는 듯 허정이고
신열이 도지는 한밤중, 식은땀에
냉수를 연거푸 들이켜도 갈증 가시지 않는다 하니
아마 예전에도 앓아본 경험이 있는
그리움이라는 환절기 독감이 심하군요
여기 소주(또는 약주) 몇 병을 처방할 테니
1일 1회 퇴근 직후 30분부터
한 병을 일곱 잔으로 나누어 마시세요
그리고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자! 다음 환자분!
♧ 산하山河
저것 좀 보아
저 무거운 산을 품고, 강이
어화둥둥 바다로 간다
야윈 등 쓸어안고
찢어진 상처 서로 싸안아
허기져도 함께 가자
힘겨워도 함께 가자
♧ 새벽 범종
어데계시능교
어데게시능교
새벽 냉기 알몸으로 걸친
빛도 소리도 숨죽인 한판골*
가늘고 길게 너울져
헤매이며 부르는 소리
조그만 등잔에 불을 밝히다
문득 깨어있는 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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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가 있는 지리산 유평리에서 취밭목을 오르는 바로 뒤 계곡
♧ 어둠도 빛만큼 중요합니다
어둠도 빛만큼 중요합니다
잿마루 한낮의 보이지 않는 별들
결 고운 밤하늘에만 반짝이듯
나는 어둠입니다
그대 감추어 둔 영혼 더욱 영롱하게 할
칠흑 같은 어둠입니다
세상 깊은 꿈결이면
산중의 어둠 한결 맑아
그 어둠 짙은 만큼
계곡과 능선 위의 별 더욱 초롱하고
그 초롱함은 다시
어둠의 숨결이 되기에
* 권경업 시선집 『달빛 무게』 (작가마을, 2008)에서
* 사진 : 백서향(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