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선집 '달빛 무게'의 봄 시편(2)

김창집 2022. 3. 12. 00:32

 

봄이 두려운 건

 

꽃 피기 때문입니다

피었다 지는 일 일상이겠지만

 

꽃피면 더 두려운 건

꽃 지기 때문입니다

 

 

 

봄비

 

꽃 진다

쑥밭재 산벚꽃 다 진다

 

어차피 질 운명이라지만

가벼운 제 몸도 어찌할 수 없는,

저 속절없는 절망 위에

아린 눈물을 보태는

너는 도대체 누구

 

 

 

환절기 독감에 대한 처방전

 

가슴 답답하여 말은 하고 싶으나 목이 잠기고

시도 때도 없이 미열은 일어, 정신은 멍하니

걸음은 자꾸 허방을 짚는 듯 허정이고

신열이 도지는 한밤중, 식은땀에

냉수를 연거푸 들이켜도 갈증 가시지 않는다 하니

아마 예전에도 앓아본 경험이 있는

그리움이라는 환절기 독감이 심하군요

 

여기 소주(또는 약주) 몇 병을 처방할 테니

11회 퇴근 직후 30분부터

한 병을 일곱 잔으로 나누어 마시세요

그리고 3일 후에 다시 오세요, ! 다음 환자분!

 

 

 

산하山河

 

저것 좀 보아

저 무거운 산을 품고, 강이

어화둥둥 바다로 간다

 

야윈 등 쓸어안고

찢어진 상처 서로 싸안아

허기져도 함께 가자

힘겨워도 함께 가자

 

 

 

 

새벽 범종

 

어데계시능교

어데게시능교

 

새벽 냉기 알몸으로 걸친

빛도 소리도 숨죽인 한판골*

가늘고 길게 너울져

헤매이며 부르는 소리

 

조그만 등잔에 불을 밝히다

문득 깨어있는 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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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가 있는 지리산 유평리에서 취밭목을 오르는 바로 뒤 계곡

 

 

 

어둠도 빛만큼 중요합니다

 

어둠도 빛만큼 중요합니다

잿마루 한낮의 보이지 않는 별들

결 고운 밤하늘에만 반짝이듯

 

나는 어둠입니다

그대 감추어 둔 영혼 더욱 영롱하게 할

칠흑 같은 어둠입니다

 

세상 깊은 꿈결이면

산중의 어둠 한결 맑아

그 어둠 짙은 만큼

 

계곡과 능선 위의 별 더욱 초롱하고

그 초롱함은 다시

어둠의 숨결이 되기에

 

 

               * 권경업 시선집 달빛 무게(작가마을, 2008)에서

               * 사진 : 백서향(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