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문충성 시집 '빈 길'의 시(1)

김창집 2022. 4. 16. 23:58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슬픈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슬프지 않을 것이다

몇 백 년 판쳐온 존재하지 않는 것들

때로 슬프고

때로 고통스럽고

때로 행복하다 우리는

얼마나 나위 없는 바보인가

무릉도원

이어도

유토피아

자유

평등

박애

산타클로스

파라다이스

지옥

 

 

 

빈 수레꾼들 빈 행진

 

시대 역사 까먹는 자들 빈 논리

 

누가 읽는가 스테판 말라르메

 

누가 읽을 수는 있는가

 

한글로

 

아니면

 

영어로…… 그럼

 

읽을 수야 있지

 

빈 수레꾼들 빈 행진

 

엉터리들

 

천재들

 

빈 웃음소리들

 

 

 

빈 길

 

사라져버렸다 내가 다니던 길

 

끝내

 

찾을 수 없다

 

바람이 되었나

 

바람 불면 흙먼지에 휩싸여

 

먼지투성이 되던 길

 

늦여름

 

저물녘

 

시뻘겋게 지는 해

 

가슴에 품고 저마다

 

찬란한 금빛 비상 마련하는

 

고추잠자리들

 

쫑 쫑 쫑

 

날아다니던 그

 

빈 길

 

 

 

고사리

 

봄비 내린 뒤

고사리 꺾는다

새 봄 꺾는다고 히히대는 잡종들

속에

 

나는

없다

 

고사리

도르르

새순 새파라니

피워 올리는

 

할마니

하르방

어멍

연둣빛

봄비

젖는

속에

있다

나는

 

 

 

미친 짓거리

 

깊은 밤 지나

새벽 5

잠이나 잘 일이지

별 것 없는 시 쓴다고

한밤

지새우다니

, !

이보다 더 슬픈 일 있을까

싸구려 담배 새마을한 갑

사지도 못할 시

한 편 쓰지도 못하고

‘TIME’ 한 갑 다 태우며

 

 

 

삶을 위하여

 

벗겨내어야 한다 빈 껍질은

벗겨내어도 속살이

안 보이면 다시

벗겨내어야 한다 빈 껍질은

 

속살이

보일 때까지

혼이

비칠 때까지

 

 

                                        * 문충성 시집 빈 길(,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