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시집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 (1)
♧ 겨울 강 소묘
언 몸 데우느라
꿈틀대다 서버렸다
시커멓게 눈발 몰려올 즈음
바람에 밀리며 배 한 척
잔뜩 긴장해 있다
이 눈 뒤, 얼지도 모른다
기다리기도 했지만
건넌다고 능사는 아니다
어차피 돌아올 것이면
그냥 머물기도 하는 것이지
늘 흔들렸으면서도
고즈넉한 날엔
새 한 마리도 오지 않아
더 흔들리고 싶은.
♧ 군무 2
수면 위에 납작 엎드려
볼 비비며 펄럭이다
헉헉대며 곤두박질치다
다시 수평으로 내려
떼거리의 저 원만한 껴안음
수천의 환희가 덩어리로
팔랑팔랑 내려 저렇게
길 하나 트고 길 위로
어둠이 내리는 빛발이
존재 위를 흩날릴 때
삶이란 눈빛만으로 황홀한 것
새카만 춤 속에서 하날
끄집어내어 나도
저런 사랑 해 봤으면.
♧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
가뭇없이 지워졌다
다시 살아나는 흔적 하나
눈을 빛내고 있다
마주 한 물푸레나무 이파리만한
아주 조막만한
유년의 기억 한 쪼가리
배곯아 긴긴 겨울밤을 어린아이
군침 삼키는 서슬에
돌아눕던 어머니
당신의 흔적은 아무데도 없었는데
이순의 문턱을 넘어선 날
내 앞 허공에
갈인 듯 강물인 듯 언덕인 듯
산인 듯 하늘인 듯
당신이 만지다 간 흔적은
세상없이 아름다워라
바람이 지우다
지우다 아직도 남은.
♧ 동백 진 뒤
사람의 일이란 다 그런 것이네
한때 잘 나가다
조금은 망가지다
아주 기울면 누워버리는 것이네
아, 동백 진 뒤
거적에 덮인 저 통곡 들어보게
왜 일찍 젔는가
후회함은 아니네
눈물 흘리는 건 그렇지
툭툭 지고 난 뒤
더 질게 없지 않나
모얼 더 바라랴만
더 지고 싶은
누워서도 더 눕고 싶은.
♧ 물안개
아슴푸레 들렸나
아기 울음
떨던 고비
이제야
밤새 물살 뒤척임
알 듯하다
하얀 배냇저고리 속
옴지락거림 있고
안 들리는 숨결에
물도 일렁임
멎은 한때
어머니 젖내
물큰한.
♧ 별도봉 3
산을 내린다고
다 놔두고
달랑 몸만 왔잖으냐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두고 온 것 어쩌겠느냐
바다만 끼고 앉았겠다
옆집 사라紗羅
치맛자락에 흠칫흠칫
노을 주워 담을 땐
가슴 붉어지더라
동백도 지고 난
눈 꼭 감고 있겠다.
*김길웅 시집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 (대한문학, 200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