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길웅 시집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 (1)

김창집 2022. 4. 19. 00:25

 

겨울 강 소묘

 

언 몸 데우느라

꿈틀대다 서버렸다

시커멓게 눈발 몰려올 즈음

바람에 밀리며 배 한 척

잔뜩 긴장해 있다

이 눈 뒤, 얼지도 모른다

기다리기도 했지만

건넌다고 능사는 아니다

어차피 돌아올 것이면

그냥 머물기도 하는 것이지

늘 흔들렸으면서도

고즈넉한 날엔

새 한 마리도 오지 않아

더 흔들리고 싶은.

 

 

 

군무 2

 

수면 위에 납작 엎드려

볼 비비며 펄럭이다

헉헉대며 곤두박질치다

다시 수평으로 내려

떼거리의 저 원만한 껴안음

수천의 환희가 덩어리로

팔랑팔랑 내려 저렇게

길 하나 트고 길 위로

어둠이 내리는 빛발이

존재 위를 흩날릴 때

삶이란 눈빛만으로 황홀한 것

새카만 춤 속에서 하날

끄집어내어 나도

저런 사랑 해 봤으면.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

 

가뭇없이 지워졌다

다시 살아나는 흔적 하나

눈을 빛내고 있다

마주 한 물푸레나무 이파리만한

아주 조막만한

유년의 기억 한 쪼가리

배곯아 긴긴 겨울밤을 어린아이

군침 삼키는 서슬에

돌아눕던 어머니

당신의 흔적은 아무데도 없었는데

이순의 문턱을 넘어선 날

내 앞 허공에

갈인 듯 강물인 듯 언덕인 듯

산인 듯 하늘인 듯

당신이 만지다 간 흔적은

세상없이 아름다워라

바람이 지우다

지우다 아직도 남은.

 

 

 

동백 진 뒤

 

사람의 일이란 다 그런 것이네

한때 잘 나가다

조금은 망가지다

아주 기울면 누워버리는 것이네

, 동백 진 뒤

거적에 덮인 저 통곡 들어보게

왜 일찍 젔는가

후회함은 아니네

눈물 흘리는 건 그렇지

툭툭 지고 난 뒤

더 질게 없지 않나

모얼 더 바라랴만

더 지고 싶은

누워서도 더 눕고 싶은.

 

 

 

물안개

 

아슴푸레 들렸나

아기 울음

 

떨던 고비

 

이제야

밤새 물살 뒤척임

알 듯하다

 

하얀 배냇저고리 속

옴지락거림 있고

안 들리는 숨결에

 

물도 일렁임

멎은 한때

 

어머니 젖내

물큰한.

 

 

 

별도봉 3

 

산을 내린다고

다 놔두고

달랑 몸만 왔잖으냐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두고 온 것 어쩌겠느냐

 

바다만 끼고 앉았겠다

 

옆집 사라紗羅

치맛자락에 흠칫흠칫

노을 주워 담을 땐

가슴 붉어지더라

 

동백도 지고 난

눈 꼭 감고 있겠다.

 

 

           *김길웅 시집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대한문학, 200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