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의 동시(1)
김창집
2022. 6. 2. 00:14

♧ 낮달
낮달이 써레봉을 넘다가
중봉에 걸렸다
망태 장대 그냥 두어라
손 뻗으면 잡을 듯
재 너머 벽송사 가는 길목
깔깔대는
몇 안 되는 광점동 아이들 위해
오늘밤은, 쑥밭재로
꼬리별이나 듬뿍 떨어져라
오줌싸개들 발이 저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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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 함양군 마천면 추성동의 절.
*쑥밭재 : 대원사에서 벽송사로 넘는 고개.
*광점동 : 쑥밭재에서 벽송사 쪽 아랫동네.

♧ 돌부처
경주 남산 미륵골
천년千年을 앉아계시는
부처님 엉덩이 아래
개미들이 들락거립니다
엄숙하신 얼굴에도 간지러운지
미소를 지으십니다

♧ 무제치기 폭포
그리움엔 길이 없어
천길 벼랑 몸을 던집니다
나지막이 나지막이
그대라는 바다 가 닿고 싶어

♧ 그믐달 2
넘으려는 중봉마루 쉽지 않아
밤마다 제 살 도려낸 뒤
비워, 비우라며
비울 것 다 비운 길상사 도법스님 법문

♧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
아침 산책길 숲 속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습니다
보는 이마다, 다들
눈부셔라, 눈부셔라 말하지만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잇감도 걸리지 않을
다 드러나 버린 거미줄
안개 낀 삶의 막막함에, 때로는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픕니다
* 권경업 시집 -어른을 위한 동시 1 『하늘로 흐르는 강』 (작가마을, 2008)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