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드리문학 제10집 '바람의 씨앗'의 시조(6)와 풍란
♧ 쌍아래아 - 오승철
♧ 새별오름의 가을 - 문순자
“멜 들었져 멜 들었져”
“오름에 멜 들었져”
와글바글 가을 햇살
와글바글 억새 무리
그물에 걸려든 바다
윤슬로 파닥인다
♧ 이제는, 꽃 - 조영자
분꽃이 제 몸 사려 꽃잎을 오므릴 때
혼자 된 친정어머니 손톱을 깎고 있다
마당귀 볕살을 바라 실눈을 가만 뜨고
가난으로 범벅이 된 아득도 한 젊은 시절
기제사 스물 몇 번 종가를 받드느라
팽팽한 생의 이랑엔 손톱 자랄 틈도 없던
새벽별 그림자에 푸른 힘줄 세우던 손
끝도 없이 쌓이는 일 손금조차 다 닳았다
아흔 살 기도하는 손, 이제야 피는 꽃잎
♧ 거부반응 - 강현수
습관처럼 야근하고
습관처럼 돌아온다
연장 근무하듯
늦은 밥상 또 차리면
고등어
망가진 살 점
생각 하나 침투한다
푸석하고 졸아들고
빛이 다한 물결 한 점
내 몸에 푸들푸들
지느러미 되살아나
밤새껏 너를 벗어날
비상구만 찾는다
♧ 꿀 따는 날 - 김영순
때죽나무 숲속에 전쟁이 났나 보다
벌이 훔쳐온 꿀 내가 다시 훔치는 날
돌돌돌 자동 채밀기, 전리품을 챙긴다
그런 날은 어찌 알고 외삼촌이 찾아온다
가래떡 몇 줄 사 들고 건들건들 저 너스레
첫 꿀에 찍어 먹으면 바람기 도진다나
한때는 서울에서 전당포를 했다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삼촌삼촌 한량삼촌
외갓집 거덜내버린
어머니의 푸른 통점
푸른 통점,
벌침 한 방 쐰 것 같은 그 자리
탈탈 털린 벌장에 벌들이 돌아올 무렵
숲은 또 어루만지듯 꽃불을 켜는 거다
*정드리문학 제10집 『바람의 씨앗』(황금알, 2022)에서
*사진 : 풍란(소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