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의 시조(5)

김창집 2022. 7. 29. 00:14

 

육박나무

 

수목원 가는 길에 군복무늬 나무를 본다

태풍도 넘겨놓고 4·3 도 섰는데

신새벽 6·25 전쟁 아버질 또 부른다

 

목총 들고 핫둘핫둘 사격은 고작 5

LST 함정 같은 제주항 주정공장

한가위 보름달마저 가지 말라 붙든다

 

칠십년 만에 대신 받은 [6·25 참전용사증]

팔씨름, 팔씨름만은 져본 적이 없다는

아버지 이두박근이 꿈틀대는 것을 본다

 

 

 

울럿이

 

누게 가렌 헤시카

누게 오렌 헤시카

 

고향은 고향대로

입 비쭉 코 비쭉 ᄒᆞ는디

 

울럿이 정제 무뚱을 감장도는 ᄌᆞ냑 ᄉᆞ시

 

 

 

봄을 사다

 

땅 한 평을 살까나

하늘 한 평 살까나

 

살짝 간맞추듯 뻐꾹 울음 실린 봄

 

내 몸을 맡겨서라도

몇 평 봄을 살까나

 

 

 

그렇게 보낸 저녁

 

부음 하나

친구 하나

그렇게 보낸 저녁

 

한 줄기 천둥 번개 마을 어귀 다녀가듯

 

내 얼굴

우주 한켠을

내리긋는

대상포진

 

 

 

이장 바당

 

꿔올 걸 꿔와야지

사내를 꿔왔다고?

방사탑도 막지 못한 4 · 3이며 625

옆 마을 함덕리에서 쌀 꾸듯 꿔왔다고?

 

여자는 안 된다고 그 누구도 말 안했다

저 바다 거센 물결

주름잡는 대상군마저

이장 일 맡는다는 건 꿈도 꾸질 못했다

 

그 어떤 난리통에도 갚을 건 갚아야지

몇 마지기 밭처럼 내어준 바당 한켠

밤이면 별빛 한 무리

자맥질하는 가슴 한켠

 

 

                      * 오승철 시조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 사진 : 파도 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