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의 시조(5)
♧ 육박나무
수목원 가는 길에 군복무늬 나무를 본다
태풍도 넘겨놓고 4·3 번番도 섰는데
신새벽 6·25 전쟁 아버질 또 부른다
목총 들고 핫둘핫둘 사격은 고작 5발
LST 함정 같은 제주항 주정공장
한가위 보름달마저 가지 말라 붙든다
칠십년 만에 대신 받은 [6·25 참전용사증]
팔씨름, 팔씨름만은 져본 적이 없다는
아버지 이두박근이 꿈틀대는 것을 본다
♧ 울럿이
누게 가렌 헤시카
누게 오렌 헤시카
고향은 고향대로
입 비쭉 코 비쭉 ᄒᆞ는디
울럿이 정제 무뚱을 감장도는 ᄌᆞ냑 ᄉᆞ시
♧ 봄을 사다
땅 한 평을 살까나
하늘 한 평 살까나
살짝 간맞추듯 뻐꾹 울음 실린 봄
내 몸을 맡겨서라도
몇 평 봄을 살까나
♧ 그렇게 보낸 저녁
부음 하나
친구 하나
그렇게 보낸 저녁
한 줄기 천둥 번개 마을 어귀 다녀가듯
내 얼굴
우주 한켠을
내리긋는
대상포진
♧ 이장 바당
꿔올 걸 꿔와야지
사내를 꿔왔다고?
방사탑도 막지 못한 4 · 3이며 6․25
옆 마을 함덕리에서 쌀 꾸듯 꿔왔다고?
여자는 안 된다고 그 누구도 말 안했다
저 바다 거센 물결
주름잡는 대상군마저
이장 일 맡는다는 건 꿈도 꾸질 못했다
그 어떤 난리통에도 갚을 건 갚아야지
몇 마지기 밭처럼 내어준 바당 한켠
밤이면 별빛 한 무리
자맥질하는 가슴 한켠
* 오승철 시조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 사진 : 파도 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