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1)와 닭의장풀

김창집 2022. 8. 11. 00:23

 

목화

 

 

열두 근 깔고

다섯 근 덮고

포근포근

꽃의 무게

 

수만 송이

덮고 잤다니

수만 송이

깔고 잤다니

 

뜨겁게 맺은 열매가

나였단 말이지

 

 

 

 

 

옷이라 써놓고 사람이라 읽는다

까막눈 어머니도 어림짐작 깨쳤을

사람을 그려 놓고서 옷이라 읽는다

터지면 꿰매주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작아지면 늘려주는 그런 게 품이라고

사람이 옷을 만들고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풀각시

 

 

청상의 어머니 밤낮 없는 삯바느질로

외할망 손에 크던 콩알만 한 오누이

쌍무덤 상석에 앉아 넌 어멍 난 아방

 

아버지 빈자리는 여섯 살 누이가

겨를 없는 어머니의 빈자리는 한 살 터울 동생이

온전히 가족을 이룬 넌 어멍 난 아방

 

 

 

 

 

제 새끼 키우면서 안 해본 일 없었다고

그 속 삭인 세월 썩어 고인 것들도

하나 둘 풀어놓으니 참 맑게도 흐릅니다

 

 

 

닭가슴살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품을 벗어나도 못 해준 기억만 남아

어머니 가슴은 온통 빗살로 그어져 있네

 

 

                                    * 이애자 시집 풀각시(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닭의장풀(달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