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1)와 닭의장풀
김창집
2022. 8. 11. 00:23
♧ 목화
열두 근 깔고
다섯 근 덮고
포근포근
꽃의 무게
수만 송이
덮고 잤다니
수만 송이
깔고 잤다니
뜨겁게 맺은 열매가
나였단 말이지
♧ 옷
옷이라 써놓고 사람이라 읽는다
까막눈 어머니도 어림짐작 깨쳤을
사람을 그려 놓고서 옷이라 읽는다
터지면 꿰매주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작아지면 늘려주는 그런 게 품이라고
사람이 옷을 만들고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 풀각시
청상의 어머니 밤낮 없는 삯바느질로
외할망 손에 크던 콩알만 한 오누이
쌍무덤 상석에 앉아 넌 어멍 난 아방
아버지 빈자리는 여섯 살 누이가
겨를 없는 어머니의 빈자리는 한 살 터울 동생이
온전히 가족을 이룬 넌 어멍 난 아방
♧ 물
제 새끼 키우면서 안 해본 일 없었다고
그 속 삭인 세월 썩어 고인 것들도
하나 둘 풀어놓으니 참 맑게도 흐릅니다
♧ 닭가슴살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품을 벗어나도 못 해준 기억만 남아
어머니 가슴은 온통 빗살로 그어져 있네
* 이애자 시집 『풀각시』 (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닭의장풀(달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