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신자 시조집 '난바르'의 시조

김창집 2022. 8. 27. 00:15

 

 

해녀콩 이야기

 

 

마흔넷 어머니는

 

배 속의 나를 떼려

 

해녀콩 한 줌 먹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녀콩, 날 부여잡고

 

세상 풍파 버틴다

 

 

 

 

레드향

 

 

따뜻한 너의 말이 날 썩게 만들었지

뜬소문 옮겨지다 곪아 가고 번져서는

향기로 짓물러가며 덧댄 상처 감췄네

 

모질고 둥글기로 마음먹곤 하였지

다 마를 그 정도만 젖을 거라 다짐하며

올 봄도 새살의 향기 궂은 세상 버텼네

 

창고 속 레드향이 또다시 입을 여네

그래 넌, 정말 모질게 살긴 하는 건가

아 몰라, 너처럼 붉은 내 마음 나도 몰라

 

 

 

 

짜장면

 

 

홍시빛 늦가을이 번지는 오후 한 시

한수리 반점에서 아버님과 먹는 짜장

흐뭇이 입맛 다시며 삶의 주름 펴신다

 

화장지 물에 적셔 짜장 묻은 입 닦으니

아고게, ᄄᆞᆯ이우꽈? 메누린 경 못허주게

아줌마 나를 보면서 효녀라고 칭찬했다

 

흘린 입 닦아줘서 졸지에 효녀됐네

이래저래 반은 흘리고 불어버린 그 면발은

아버님 살아생전에 함께 먹은 점심 한 끼

 

 

 

 

어머니가 남긴 그릇

 

 

어머니 이름으로 들쑤시는 이 봄날

예고 없이 마당에 나와 나 대신 허전하다

시간이 뒷걸음질 쳐

그날들 기억하는가

 

밥사발 국사발이 생김새도 엇비슷

따스한 온기들이 아직도 남았는 듯

한 백년 버텨온 삶이 어머니를 찾는다

 

새들이 곁눈질로 슬며시 훔쳐보다

시간만 잔뜩 쌓인 텅 빈 그릇 알아내고

꽁지깃 길게 세우며 허공을 오르는데

 

마당가에 덧붙은 미나리 줄기 하나

그 안에 물 고이면 기다리다 물 고이면

어머니 긴 머리처럼 들어설 것 같아요

 

 

 

 

난바르*

 

 

  큰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흐릿하다

 

  발 디딜 곳 없다 세상은 수심이 너무 깊어 발이 닿지 않았다 태안 만리포 바다는 개똥밭에 드는 사람도 뇌선을 먹는다 칠성판을 짊어지고 오늘도 얼마나 저승길을 오고 갔을까 불어터진 그녀의 삶은 바다 향해 작살 겨눈 고구려의 전사답다 호멩이 하나 빗창 하나 본조겡이 하나 짊어진 결의도 하나 세상 이치를 몰라서인가 물때를 잘못 만나서인가 한 생을 물구나무로 살아가는 큰언니의 삶

 

  내게는 어느 노정에서나 눈발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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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바르 : 마을을 떠나 해녀들이 여러 날 동안 배에서 숙식하며 이 섬 저 섬으로 돌면서 치르는 물질.

*큰눈 : 주로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물 속을 들여다보는 둥그렇고 큼지막하게 만들어진 물안경.

 

 

 

                                            *김신자 시조집 난바르(좋은땅,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