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정인수 시조집 '섬과 섬 사이'의 글(2)

김창집 2022. 8. 28. 00:15

 

 

물질

 

 

빗창*을 손에 쥐고

물속에 들어가면

 

소중이* 바람으로

열두 길 물 속이다.

 

전복을 따기도 전에

차오르는 물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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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창 : 전복 채취용 도구.

*소중이 : 1960년대 이전의 제주해녀복(물옷, 소중기)

 

 

 

 

불턱 1

 

 

모여들면 언제든지

시끄러워 좋은 불턱*

 

왁자지껄 짖어대면

속이 다 후련하다.

 

쌓였던 근심걱정들이

불꽃 속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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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한 곳에 돌담을 둘러서, 소중이를 갈아입거나 불을 쬐게 만든 곳.

 

 

 

 

애기 상군

 

 

어머니 삼대 째가

해녀였던 시절에는,

 

따라만 다녔어도

반타작은 됐을 테고,

 

놀이 반, 물질 반으로

애기상군 되어간다.

 

 

 

 

메역 ᄌᆞ문 날

 

 

메역 ᄌᆞ문 날* 바닷가엔

사람들로 미어진다.

 

마음은 사람대신

날미역이 뒤덮이고,

 

바다는 날미역대신

사람으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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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 해경海警 또는 미역 허채許採라고도 하는데, 금채 했던 해산물을 채취하기 시작하는 날.

 

 

 

 

게석한줌

 

 

물질을 갓 배우는

조무래기 해녀들은

 

상군 우러르길

부처님 보듯 한다.

 

어쩌다 게석한줌*이면

동네방네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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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군 해녀들이 나이어린 소녀나 할머니한테 미역 한 줌, 소라, 전복 등을 선물하는 행위.

 

 

                                          *정인수 시조집 섬과 섬 사이(고요아침,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