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정인수 시조집 '섬과 섬 사이'의 글(2)
김창집
2022. 8. 28. 00:15
♧ 물질
빗창*을 손에 쥐고
물속에 들어가면
소중이* 바람으로
열두 길 물 속이다.
전복을 따기도 전에
차오르는 물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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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창 : 전복 채취용 도구.
*소중이 : 1960년대 이전의 제주해녀복(물옷, 소중기)
♧ 불턱 1
모여들면 언제든지
시끄러워 좋은 불턱*…
왁자지껄 짖어대면
속이 다 후련하다.
쌓였던 근심걱정들이
불꽃 속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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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한 곳에 돌담을 둘러서, 소중이를 갈아입거나 불을 쬐게 만든 곳.
♧ 애기 상군
어머니 삼대 째가
해녀였던 시절에는,
따라만 다녔어도
반타작은 됐을 테고,
놀이 반, 물질 반으로
애기상군 되어간다.
♧ 메역 ᄌᆞ문 날
메역 ᄌᆞ문 날* 바닷가엔
사람들로 미어진다.
마음은 사람대신
날미역이 뒤덮이고,
바다는 날미역대신
사람으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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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 해경海警 또는 미역 허채許採라고도 하는데, 금채 했던 해산물을 채취하기 시작하는 날.
♧ 게석한줌
물질을 갓 배우는
조무래기 해녀들은
상군 우러르길
부처님 보듯 한다.
어쩌다 게석한줌*이면
동네방네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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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군 해녀들이 나이어린 소녀나 할머니한테 미역 한 줌, 소라, 전복 등을 선물하는 행위.
*정인수 시조집 『섬과 섬 사이』 (고요아침,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