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4)
♧ 제주사람
부러, 바람 앞에 틈을 내준 밭담들 보라
어글락 다글락 불안한 열 맞춤에도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는 엇각을 지니고 있다
♧ 밥차롱
벵작밭*일 나가신 어머니 기다리다
피들락 엎어버린 일곱 살의 밥차롱
그 후로 밥이란 줄곧 매달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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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어주고 수확물을 주인과 정해진 비율로 나누는 밭.
♧ 보리게역*
비 칠칠
유월 장마
솥뚜껑
뒤집어 놓고
어머니
타닥타닥
보리 볶는
부엌에
땀 촐촐
ᄐᆞ다 앉아서
닷뒛부주
보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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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숫가루의 제주어.
♧ 보리게역
-밭 가는 날
어러러러-
할아버지
후렴 따라
구르는 해
물착 젖은 갈중이
소금꽃이 필 즈음
후르르
게역 한 사발
더위 몰고
가시네
♧ 물허벅
연기 팡팡
구름 팡팡
동한두기 바닷가
그을린 축ᄇᆞ름엔 낮에도 별이 돋았고
싸르륵 위벽을 흩던 외갓집 파도소리
눈 팡팡
ᄇᆞ름 팡팡
외할망 가시던 날
지붕 기운 초가 함박눈 함박이 내려
살아서 물로 채운 가난
딱 하루 능을 허하시더라
눈물 팡팡
콧물 팡팡
입관 끝낸 천막 안
먼 궨당 서넛 앉아 두건 한 겹 슬픔 두 겹 접는데
물허벅 검붉은 팥죽 울컥쿨컥 쏟더라
화르르 한 줌 재 보리낭불 같은 명줄
구석을 고집하던 어둔 부엌 그 자리에
외할망 쪼그려 졸 듯 물허벅이 졸고 있더라
* 이애자 시집 『풀각시』 (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튤립나무(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