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풀각시'의 시조(4)

김창집 2022. 8. 30. 00:11

 

 

제주사람

 

 

부러, 바람 앞에 틈을 내준 밭담들 보라

어글락 다글락 불안한 열 맞춤에도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는 엇각을 지니고 있다

 

 

 

 

밥차롱

 

 

벵작밭*일 나가신 어머니 기다리다

피들락 엎어버린 일곱 살의 밥차롱

그 후로 밥이란 줄곧 매달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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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어주고 수확물을 주인과 정해진 비율로 나누는 밭. 

 

 

 

 

보리게역*

 

 

비 칠칠

유월 장마

솥뚜껑

뒤집어 놓고

 

어머니

타닥타닥

보리 볶는

부엌에

 

땀 촐촐

ᄐᆞ다 앉아서

닷뒛부주

보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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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숫가루의 제주어.

 

 

 

 

보리게역

    -밭 가는 날

 

 

어러러러-

할아버지

후렴 따라

구르는 해

 

물착 젖은 갈중이

소금꽃이 필 즈음

 

후르르

게역 한 사발

더위 몰고

가시네

 

 

 

 

물허벅

 

 

연기 팡팡

구름 팡팡

동한두기 바닷가

그을린 축ᄇᆞ름엔 낮에도 별이 돋았고

싸르륵 위벽을 흩던 외갓집 파도소리

 

눈 팡팡

ᄇᆞ름 팡팡

외할망 가시던 날

지붕 기운 초가 함박눈 함박이 내려

살아서 물로 채운 가난

딱 하루 능을 허하시더라

 

눈물 팡팡

콧물 팡팡

입관 끝낸 천막 안

먼 궨당 서넛 앉아 두건 한 겹 슬픔 두 겹 접는데

물허벅 검붉은 팥죽 울컥쿨컥 쏟더라

 

화르르 한 줌 재 보리낭불 같은 명줄

구석을 고집하던 어둔 부엌 그 자리에

외할망 쪼그려 졸 듯 물허벅이 졸고 있더라

 

 

                                  * 이애자 시집 풀각시(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튤립나무(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