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 시선집 '제주야행'의 시(3)
♧ 앓고 있는 너에게
앓고 있다는 네 소식
나를 아프게 한다
타오르는 용암을
가슴에 지녀 살겠노라고
잠깐의 고임에도 괴로워하며
여윈 몸 통째로 사르며
숨차게 흐르는 너
이 삶에서 건져 올릴
지푸라기 하나조차도
때론 가혹하게
우리를 걷어차느니
열 오른 이마에
손 한 번 짚어주지 못하고
나는 그저 멀리서
아린 가슴으로 두 손만 모을 뿐이다
눈부신 몸 껴안고
겨울잠 한숨 자고 깨듯이
그렇게 일어날 수 있겠지 너는
♧ 눈물의 길은 깨끗하다
비 오는 날은
하늘만 허물어져 내리는 건 아니다
가슴 깊이 여민 눈물
한바탕 허물어져 흘러간다
헤아릴 수 없는 죄를 지어
이 세상 어느 곳
발붙일 데 없다 해도
눈물의 길은 깨끗하다
상처 없는 가슴을
가슴이라 할 수 있는가
눈물의 길 되밟아 가면
아름다운 상처가 있다
밝히라 그 상처 위에
하나씩의 등불을
♧ 인동 창窓
못 견딜 때마다 창가로 간다.
어머니가 심어준 인동 꽃
봄마다 향기롭다
목숨의 줄기 허공 벽에 부딪혀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져도
한사코 뻗어 휘감아 잡는 덩굴손
내게 지니라고
모진 겨울 칼바람에
앗기지 않는 잎새의 푸름
내게 지니라고
어머니가 심어준 눈물어린 당부
머리맡 창가에 늘 푸르다
♧ 미친 사랑의 노래 5
내 아버지 누이
미쳐서 죽었다
4․3사태 피해서 일본 간 지아비
찾아서 밀항선 타고 들락거리다가
사랑의 그리움에 침몰해 버렸다
어떤 의사도 건져내지 못하였다
격정의 소용돌이 속의 그녀
사랑하는 사람 위해서 지은 옷 한 벌
보따리에 싸안고 부둣가 서성이며
날마다 날마다 마른 가지로 여위어
새까맣게 타죽었다 그리움의 불길에
풀조차 돋지 않는 그 무덤에서
들려온다
죽어서도 부르는 미친 사랑의 노랫소리
♧ 제주바다
나는 흑조黑潮에서 태어났다
저 소금기 많은 생명의 조류
해가 솟는 아침과
달이 뜨는 저녁을
흐르는 피 속에 지녀
기쁨과 슬픔 기울고 차며
끝없이 파도친다
아슬아슬 벼랑길 같은 세상
청맹과니로 건너며
사랑한다 피고 지는 덧없음을
소리치며 흘러가는 제주바다
나의 바다는
떠나가는 눈물을 실어 보내고
돌아오는 눈물을 실어 오느니
저 끊임없이 부활하는 생명의 흐름
내게서 출렁이는 동안은
나는 노래하리
아름다운 제주바다를
*김순이 시선집 『제주야행濟州夜行』 (황금알, 20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