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언 제2시집 '내게 거는 주술'의 시
♧ 시인의 말
흙 부스러기 다독이며
사유의 알갱이 흩뿌렸지만
웃음 벙근 풀꽃 하나 없다.
등성이 넘는 노을에 바칠
한 줄 캐러 서성이던 밤이
그대로 통점의 추억이면 좋겠다.
아직은 갈 길이 있어서
신발 끈 조이며 하루를 연다.
모든 게 감사하다.
2022년 9월
정복언
♧ 목련꽃
겨우내 맑은 눈으로
마음의 얼룩 다 지웠으리
하얀 웃음 살포시 머금고
사분사분 봄나들이
총총한 나그네 눈길 낚아채며
들고 온 촛대에 불을 켜네
사나흘은 족히
허공이 환하겠네
내 마음 우울한
찌꺼기도 다 태우겠네
♧ 돌아선 나비
하얀 나비 한 마리
산딸나무 꽃 위를 서성이다가
돌아서네
하얀 유니폼 입고
둘러앉은 저들
진수성찬 즐기는지
봄볕 공연 한창인지
순식간에 탐색하며
은근슬쩍 작전을 도모하던
설레는 눈빛만
허공에 펄럭이더니
실망 한 아름 털어내며
훨훨 날아가네
첫 인연이란
쉽거나 어렵거나
손 밖의 일
수줍어하면서도 열정은 깊어
천리를 못 갈까
나 보란 듯이
돌담 넘어 팔랑팔랑 날아가네
♧ 민들레 홑씨
순간이었습니다
눈 뜨고 눈 감는 일이
내 영혼의 끝에
그득 맑은 햇살만 채워 놓고
또랑또랑한 눈물만 담아놓고
온 들녘 휘돌았습니다만
아, 인생이란 그것
배우지 못한 채입니다
까무룩 잊힐 곳으로
바람 타고 소리 없이
가볍게 떠납니다
♧ 배롱나무꽃
연례행사가 된 다비식이다
허공에 불을 질러
석 달이 지나는데도 아직 식지 않아
가지 끝에서 춤추는 불꽃
죽어야 비로소 깨어나는
불가해한 경전
나더러 읽으라고 읽어보라고
심장소리 풍경으로 매달았네
내 삶을 너덜거리는 남루를 벗어
낙엽 태우듯 불을 놓고
쓸쓸히 돌아설 심산이지만
지독하구나, 불타지 않는
내 탐욕의 찌꺼기들
바람아 불어다오
한 줌의 재도 내겐 벅차구나
* 정복언 제2시집 『내게 거는 주술』 (정은출판,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