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정복언 제2시집 '내게 거는 주술'의 시

김창집 2022. 10. 8. 08:29

 

 

시인의 말

 

흙 부스러기 다독이며

사유의 알갱이 흩뿌렸지만

웃음 벙근 풀꽃 하나 없다.

 

등성이 넘는 노을에 바칠

한 줄 캐러 서성이던 밤이

그대로 통점의 추억이면 좋겠다.

 

아직은 갈 길이 있어서

신발 끈 조이며 하루를 연다.

모든 게 감사하다.

 

 

20229

정복언

 

 

 

 

목련꽃

 

 

겨우내 맑은 눈으로

마음의 얼룩 다 지웠으리

 

하얀 웃음 살포시 머금고

사분사분 봄나들이

 

총총한 나그네 눈길 낚아채며

들고 온 촛대에 불을 켜네

 

사나흘은 족히

허공이 환하겠네

 

내 마음 우울한

찌꺼기도 다 태우겠네

 

 

 

 

돌아선 나비

 

 

하얀 나비 한 마리

산딸나무 꽃 위를 서성이다가

돌아서네

 

하얀 유니폼 입고

둘러앉은 저들

진수성찬 즐기는지

봄볕 공연 한창인지

순식간에 탐색하며

 

은근슬쩍 작전을 도모하던

설레는 눈빛만

허공에 펄럭이더니

실망 한 아름 털어내며

훨훨 날아가네

 

첫 인연이란

쉽거나 어렵거나

손 밖의 일

 

수줍어하면서도 열정은 깊어

천리를 못 갈까

나 보란 듯이

돌담 넘어 팔랑팔랑 날아가네

 

 

 

 

민들레 홑씨

 

 

순간이었습니다

눈 뜨고 눈 감는 일이

 

내 영혼의 끝에

 

그득 맑은 햇살만 채워 놓고

또랑또랑한 눈물만 담아놓고

 

온 들녘 휘돌았습니다만

 

, 인생이란 그것

배우지 못한 채입니다

 

까무룩 잊힐 곳으로

바람 타고 소리 없이

가볍게 떠납니다

 

 

 

 

배롱나무꽃

 

 

연례행사가 된 다비식이다

허공에 불을 질러

석 달이 지나는데도 아직 식지 않아

가지 끝에서 춤추는 불꽃

 

죽어야 비로소 깨어나는

불가해한 경전

나더러 읽으라고 읽어보라고

심장소리 풍경으로 매달았네

 

내 삶을 너덜거리는 남루를 벗어

낙엽 태우듯 불을 놓고

쓸쓸히 돌아설 심산이지만

 

지독하구나, 불타지 않는

내 탐욕의 찌꺼기들

바람아 불어다오

한 줌의 재도 내겐 벅차구나

 

 

                             * 정복언 제2시집 내게 거는 주술(정은출판, 2022)에서